[박재현 전문기자의 씨앗과 나무]병아리풀
[박재현 전문기자의 씨앗과 나무]병아리풀
  • 경남일보
  • 승인 2022.09.26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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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아리풀, 빗방울 털며 쫑쫑 걸음을 옮기고

권태호 곡에 윤석중이 가사를 붙인 봄나들이라는 동요가 있습니다. 어릴 때 자주 불러 보셨을겁니다. 이 노래를 부르면 기분이 좋아지는데요. 어른이 되어서도 입안에 맴도는 가사들입니다. ‘나리 나리 개나리 / 입에 따다 물고요 / 병아리떼 종종종 / 봄나들이 갑니다’ 짧으면서도 간단한 가사라 아마 누구나 외우고 있을 것 같습니다. 병아리가 종종종 어미 닭을 따라가는 모습이 저절로 연상됩니다. 실제로 시골에서 그런 모습을 만나면 귀엽기도 하고 함께 따라가 보기도 하는데요. 겅중겅중 걷는 어미 닭을 따라 노란 병아리들이 줄지어 어미 닭을 따라가는 모습이 마치 음악의 악보 같아요. 이런 병아리를 닮은 풀이 있어요. 병아리풀이죠. 작은 꽃이 오종종 매달린 모습이 꼭 어미 닭을 쫓아가는 병아리떼 같습니다.

병아리풀(Polygala tatarinowii Regel)은 원지과(Polygalaceae) 원지속(Polygala Linne) 식물입니다. 여기엔 영신초, 령신초라 불리는 애기풀과 두메애기풀이 있고, 병아리풀이라고 부르는 원지가 있지요. 병아리풀은 전라남도를 포함한 중부 이북의 산이나 들의 풀밭에 나는 한해살이풀이죠. 꽃이 벌어지면 연한 자주색을 띠는데요. 나비 모양을 하고 있어요. 꽃망울일 땐 연한 초록색에 노란색이 비치는 모양인데요. 둥글레 꽃처럼 꽃줄기에 오종종 매달려 있어요. 속명인 ‘Polygala’는 그리스어로 ‘많다’라는 뜻의 ‘Polys’와 ‘젖’을 뜻하는 ‘Gala’의 합성어로 이 속에 속한 어떤 식물이 젖 분비를 촉진한다고 알려진데서 유래했지요. 그러니까 속명 ‘Polygala는 polys(많다)’와 ‘gala(젖)’의 합성어로 젖의 분비를 촉진한다고 해서 디오스코리데스(Deioscorides, 40∼90)가 원지(milkwort) 종류에 붙인 그리스명 ‘polygalon’에서 유래했다고 ‘조선식물향명집’ 주해서인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는 설명하고 있어요.

연한 자줏빛의 꽃잎 가운데 노랗게 원이 그려진 꽃이 작지만 아름다운데요. 꽃잎 사이에 노란 부분은 달걀노른자 같아요. 달걀을 깨트리면 노른자가 동그랗게 빛나는 모양이지요. 동글납작한 꽃봉오리가 다닥다닥 매달려 있는 그 모양도 예쁜데, 거기서 자줏빛의 아름다운 꽃이 피니 저절로 다가가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지요.

이끼가 얼룩진 바위에 병아리풀이 피어 있는 모습은 유명 작가가 찍은 달력 사진처럼 보입니다. 우리나라 어느 곳에나 있다지만, 찾기가 쉽지 않아요. 야생화 탐사를 하는 동아리나 전문가에게 물어봐야 병아리풀이 있는 곳을 알 수 있을 정돕니다. 산이나 들에서 쉽게 만나기 어려운 풀이거든요. 이따금 흰색으로 피는 꽃도 있는데요. 매우 드물게 별견 돼 야생화 탐사를 하는 분에게나 사진으로 얻어 볼 수 있지요.

병아리풀 꽃말은 ‘겸양’이라고 합니다. 동그란 이파리 위에 쪼옥 올라와 피는 모습이 겸손하기도 하고요. 바위틈에서 피니 쉽게 눈에 드러나지도 않고요. 얼마나 겸손하면 이렇게 숨어 필까요. 병아리풀을 만나기 위해 수많은 야생화 동아리 회원들이 눈을 씻고 다닌다고 합니다. 겸양을 갖춘 귀한 병아리풀을 한번 만나면 그렇게 기뻐한다고 하는군요.

 
 


제가 쓴 시에 ‘비 듣는 마당에서’라는 시가 있는데요. 비 내리는 날 병아리가 종종종 어미 닭을 쫓아가는 모습을 보고 쓴 시입니다. 어릴 때 아버지가 지내셨던 관사에서는 닭을 여러 마리 키웠는데요. 알을 부화한 병아리 여러 마리가 있었어요. 어미 닭과 함께 마당을 돌아다니는 병아리 보는 재미가 쏠쏠했는데요. 그때 생각이 나는군요.

“어미 닭이 병아리들을 몰고 빗방울 털며 쫑쫑 걸음을 옮기고 / 개나리꽃 봉오리에 빗방울 퐁퐁 젖어 들고 / 숲에서 시원타 폴짝 뛰는 개구리가 울타리를 넘고 / 둥지에서 멀뚱하니 비 듣는 소리에 조는 제비가 고개를 까딱대고 / 어느새 고인 웅덩이에서 빗방울들이 자갈 자갈흙을 씹으며 조잘대고 / 댓돌에 놓인 고무신에 장난치던 빗방울이 황토물을 뿌리고 / 부연 비안개가 담장 너머로 이 광경을 바라보며 슬며시 미소 짓고 / 좋구나! 비 듣는 마당을 바라보며 내 눈에 그리운 얼굴이 아른거리고”

입속에서 병아리풀 이름을 되뇌면 병아리가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나 봐요. 노란 병아리 말이죠. 어릴 때 학교 앞 문방구에서는 병아리를 팔았습니다. 한 마리에 10원 했던가 싶군요. 그걸 서너 마리 사다가 마당에 풀어놓고 집에 있는 조며 쌀을 먹이로 놓아두고 키웠죠. 병아리는 아주 잘 자랐어요. 새끼 오리도 팔았는데요. 오리와 병아리 새끼들이 마당을 오종종 뛰어다니는 걸 보면 재미나기도 하고요. 노란 꽃이 바람에 살랑살랑 날아다니는 것 같았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수챗구멍으로 들락거리던 쥐가 오리주둥이를 갉아 먹는 걸 보고는 혼비백산 달려가 쥐를 쫓아 버렸던 기억도 있습니다. 주둥이를 갉아 먹힌 오리는 주둥이가 짧동해졌어요. 어찌나 안 됐는지, 핀셋으로 먹이를 집어 입속에 넣어주었는데요. 물을 잘 먹지 못해선지 오래 살지 못했어요. 물론 병아리는 쑥쑥 자라서 닭이 되기도 했습니다.

포슬포슬한 솜털을 둘러싼 병아리 땐 이뻐서 만져주고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했는데 조금 더 자라니 노란 깃털은 사라지고 볼품없이 변해버리더군요. 그러다 듬직한 수탉이 되기도 했는데요. 마당을 어찌나 홰치고 다니던지요. 언제 그 닭이 사라졌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고 병아리 때 귀여웠던 기억만 생생하네요. 예전에는 멋 모르는 아이들이 가게에서 사 온 병아리를 날려본다고 옥상에서 날리거나 떨어뜨리는 경우가 있었는데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였을 테지요. 요즘은 초등학교 문방구 앞에서 병아리를 파는 걸 보지 못했어요. 작고 하찮은 병아리 한마리 일지언정 생명을 사고 파는 일은 이제 옳지 않은 일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생겨나고 있어서 다행입니다.

병아리는 날짐승의 새끼 또는 병아리의 뜻이 있으므로 병아리풀의 유래를 일본명에서 찾는 견해가 있는데요. 그러나 같은 속의 식물은 원지(遠志)를 전통적으로 애기풀(아기풀)이라고 했고, 병아리풀은 꽃의 모양 등이 애기풀과 닮았는데 전체가 작고 앙증맞다는 뜻이지만, 일본명은 작은 열매의 모양에 착안한 이름이므로 일부 영향을 받았을지라도 유래를 일본명에서 찾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입니다.

※ 잠수함 속의 흰 토끼 : 토끼는 잠수함 속의 산소함유도를 측정하는 지표라고 하지요. 토끼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죽은 지 일곱 시간이 지나면 잠수함 속의 사람도 산소 부족으로 죽고 만다고 합니다. 시인이 숨 쉬지 못하는 병든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들도 죽게 되겠지요. 시는 숨 쉴 공기를 가늠케 해주는 잠수함 속의 토끼처럼 사회를 정화하는 순수의 상징이지요.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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