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열 번 찍으면 나무는 죽는다
[여성칼럼]열 번 찍으면 나무는 죽는다
  • 경남일보
  • 승인 2022.09.28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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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옥희(진주여성회 대표)
전옥희(진주여성회 대표)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은 아직도 유효한 모양이다. 최근 발생한 신당역 스토킹 여성살해사건에 대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진주에서 세 건의 스토킹범죄사건이 발생했다. 그 중 전 남자친구가 배관을 타고 집에 침입하여 폭행한 스토킹 사건은 다행히 피해자의 신고와 경찰의 도움으로 큰 피해를 막았다. 하지만 창원지법 진주지원은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과 주거침입, 폭행 등 혐의를 받는 가해자에 대해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에 진주여성연대는 지난 26일 진주법원 앞에서 항의 집회를 열어 스토킹 범죄의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다.

스토킹 가해자는 누구보다 피해자의 일상을 잘 알고 있다. 전 애인이거나 구애의 대상으로 오랜 기간 관찰하고 피해자에게만 집중하는 스토커이니 당연한 일이다. 사법부의 말대로 도주와 증거인멸은 안할 수 있으나 재범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2018-2019년 형사재판 1심 판결문을 검토했을 때 파트너에 의한 살인 및 살인미수판결 433건 중 40%가 사건 전 스토킹 기간이 존재했다. 피해자는 신고전후가 다를 것이 없이 불안과 공포의 연속이다. 누구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신당역 사건처럼 홀로 죽음을 맞게 되는 비극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2021년 여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시민의 70.5%가 여성폭력 피해 이후 가장 필요한 도움을 ‘가해자로부터의 보호’로 꼽았다. 그러나 현실은 피해자의 안전이 최우선이 아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스토킹 신고 건수는 총 1만 6571건으로 지난해 전체 신고 건수를 이미 뛰어넘었지만, 피해자 보호를 위한 긴급·응급조치는 지난달까지 2725건에 불과했다. 2016년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당시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는 여성들의 절망은 2022년 똑같은 이유로 ‘국가가 죽였다’는 문장으로 되풀이되고 있다.

정부가 앞장서서 성차별은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하며, 성평등 제도를 퇴보시키는 이 때, 이러한 일들이 발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좋아하는데 안받아주니 이런 일이 생겼다”는 정치인의 발언에 은근히 공감하는 사람들이 주류가 되면 여전히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유효해진다. 열 번, 백번, 수만번 찍히는 사람은 찢기고 피를 철철 흘리며 폭력이라고 외쳤지만 들으려 하지 않았다.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고 피해자의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법률을 제정하고 이를 집행할 수사·사법기관의 인식 및 태도의 변화가 수반될 때 비로소 스토킹범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책이 마련됐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피해자를 공감하고 피해자편에 서 있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가해자는 사회적 일탈로 인한 괴물, 악마가 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원하면 여성은 내 것이 되어야 한다는 가부장제 망상을 체화한 결과로 우리 사회가 여전히 성차별사회임을 보여준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스토킹을 그저 구애, 연애로 인한 갈등이 아니라 한 사람을 파괴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잔혹한 폭력임을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스토킹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되고, 피해자가 보호받는 것이 상식이 되어야 한다. 너의 잘못이 아니라며 피해자를 먼저 보호해주는 안전한 공동체가 피해자를 살릴 수 있다. 동시에 가해자에 대해 엄중한 잣대와 처벌이 수반된다면 궁극적으로 가해자도 예방할 수 있다. 스토킹으로 일상의 공포를 견디고 살아가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 없는지 살펴보자. 그리고 손을 내밀어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함께 도와나서는 공동체를 만들어 서로의 안전망이 되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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