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함양 천년 숲속을 걸으며
[경일칼럼]함양 천년 숲속을 걸으며
  • 경남일보
  • 승인 2022.10.04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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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영(수필가·전 명신고 교장)
안명영


함양 상림 관람객이 늘어나고 있다. 숲속을 걸으면서 자연의 기를 받아 심신의 재충전이 되기 때문이리라.

고운 최치원은 진성여왕 5년(891) 천령태수로 부임한다. 위천천은 함양읍 중앙으로 흘러 빈번히 홍수로 물이 범람했다. 둑을 쌓아 물길을 돌리고 둑 옆에 나무를 심어 상림으로 불린다. 애민정신과 자연을 이용하는 지혜가 돋보이고, 천연기념물 154호(1962.12.3)로 지정되어 함양을 전국으로 알리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상림 주차장에서 숲으로 들어가면 개울물을 만나고 돌다리를 건너면 눈에 들어오는 조형물이 있다. 쑥색 돌을 기단으로 하고 그 위에 하트형의 돌을 다듬어 얹었다. ‘천년약속’과 ‘사랑나무’라는 글을 새겼다. 기단에는 ‘이 나무는 천년 숲 상림에서 영원히 함께할 인연을 맺은 사랑나무입니다. 천년의 숲 상림에서의 약속은 천년약속입니다’라고 쓰여있다. 흰머리 부부는 사랑나무 앞에서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젊은 남녀는 밀착하여 인증 샷을 찍고는 숲속으로 사라진다.

고운 최치원과 고려 현종은 소년기에 유사점이 있었다. 12세의 최치원을 맨몸으로 당나라로 유학을 보내면서 부친 최견일은 “10년 안에 과거급제하지 못하면 내 아들이 아니다”는 말로 결심을 다지게 한다. 고운은 ‘다른 사람이 백번을 노력하면 나는 천 번을 노력 한다(人百己千)’는 각오로 공부하여 18세(874)에 빈공과에 급제한다.

고려 제8대 현종 순은 태조 왕건의 8번 째 아들 욱과 헌정왕후 사이에 태어났다. 어머니는 순을 낳자마자 죽고 아버지는 사수현(사천) 사남 땅에 귀양살이한다. 겨우 말을 배운 순은 성종에게 안기면서 ‘아버지’라고 부르자 불쌍히 여겨 사수현으로 보냈다. 부자상봉의 길은 열렸지만 함께 살 수 없었다. 순을 배방사에 맡겼기 때문이다. 욱은 매일 아들을 찾았다가 돌아오는 길에 배방사가 보이는 고개에 올라 눈물을 흘리곤 했는데 후세 사람들이 ‘아들을 되돌아본다’는 고자정(顧子亭)을 세웠다.

고운 최치원은 고려에서 인정받는다. 고려 현종 11년(1020) 8월 내사령에 추증, 현종 14년 문창후로 추봉된다. 문종 28년 5대손 선지를 도염서사로 삼는다. 고려 현종은 문무백관에게 알린다. “거란과 전투에서 개경을 방어하기 위해 퇴각하는 김종현 장군 앞에 고운 선생이 신선이 되어 청마를 타고 나타나 고려비망록의 내용을 깨우쳐 주고, 전장 터에 다시 투입시켜 거란군을 괴멸시켜 귀주대첩으로 대승을 거둘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했다. 나는 태조부터 귀주대첩에 이르기까지 고운 선생의 공적을 잊을 수가 없다.”

삼국사기 최치원편에 당나라 태사 시중에게 올리는 장계는 이러하다. ‘고구려와 백제는 전성 시에 강한 군사가 백만이어서 남으로는 오(吳), 월(越)의 나라를 침입하였고, 북으로는 유주(幽州)와 연(燕)과 제(齊), 노(魯)나라를 휘어잡아 중국의 커다란 위협이 되었습니다.’ 고구려와 백제의 활동무대는 만주와 대륙에 걸치며 놀랍게도 대륙 백제가 존재함을 알게 한다.

상림에 ‘금호미 다리’가 있다. 고운 선생이 조성된 숲을 보며 도와준 산짐승의 노고를 치하하고, 작업 종료의 의미로 금호미를 힘껏 던져 신목 가지 위에 걸려 “땡그렁”하는 소리를 시작으로 천령군은 일체의 재앙이 들어오지 못하는 지상 낙토로 바뀌게 된다.

고운 선생은 떠나면서 “숲에 뱀이나 개미가 나타나면 내가 죽은 줄 알라”고 했다. 지금까지 뱀, 개구리, 해충은 거의 볼 수 없다고 한다.

상림을 찾는 관람객은 편안한 마음으로 상림 속으로 오순도순 걸어가다 끝 지점에 물레방아를 만난다. 연암 박지원은 용추계곡 안심마을에 최초로 물레방아를 설치하여 실용화한다. 노부부와 젊은 연인은 “함양산천(咸陽山川) 물레방아 물을 안고 돌고, 우리 집의 서방님은 나를 안고 돌고…” 읊조리며 에너지가 충전된 얼굴로 돌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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