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대한민국 열여덟 살 고3
[경일춘추]대한민국 열여덟 살 고3
  • 경남일보
  • 승인 2022.10.05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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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설 (숲교육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정은설 숲교육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딸아! 열여덟 곱디고운 내 딸아. 너의 복숭아 빛 도는 볼을 만질 때마다 부럽구나.

엄마의 열여덟 해 가을은 암흑이였단다.

어딘가 찬란한 빛이 있다는 소문만을 믿고 눈과 귀를 가린 채 무서움과 두려움에 떨던 가여운 소녀였어.

아무도 어디로 가야하는지 정확히 말해 주지 않았지.

그냥 그 해를 참고 견디면 내 미래가 환해진다고만 했어.

꽃이 피고 지는지도 몰랐단다.

체육시간에 하던 선착순 달리기가 기억난다.

1·2·3등으로 결승선에 들어오면 열외가 되었고 나머지는 또 1·2·3등이 되기 위해 계속 달려야 했던 그 시간들.

나보다 빨리 뛰는 친구를 잡기 위해 옷을 잡아당기기도 했고,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는 친구들이 밉기도 하고, 느린 내가 부끄럽기도 했단다.

새벽 6시 차를 타고 학교에 가서 11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했어.

그러고도 집에서 또 문제집을 풀다 책상에서 엎드려 잤단다.

그래서 내 등이 굽었을까?

나는 친구들과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고, 열여덟 살만이 가질 수 있는 복숭아빛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었어. 그건 꼭 열여덟 살 이여만 가능한 이야기들이였거든.

그 해 가을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아. 열아홉의 가을은 또 다른 가을일 뿐 이였지 어떤 해도 그걸 보상해주지 못했단다.

선생님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 수업시간에 졸지 않는다는 이야기.

노래방에서 논 이야기. 남자친구 이야기. 친구랑 싸운 이야기. 친구들 졸업사진을 포토샵으로 교정한다고 밤을 지새운 이야기, 밤새워 본 영화들, 밀린 설거지 해주는 너의 뒷모습. 동생들이랑 TV보면서 주고받는 농담들을 들으며 너의 복숭아빛 탐스런 볼을 만질 수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단다. 이 모든 것들이 대학입시보다 중요한 너의 열여덟 살의 기록이 될거야.

오늘의 행복한 웃음을 내일에게 내어주는 어리석음을 너는 겪지 말아라.

대학은 꼭 in 서울 해야 된다는 부모님 신념에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그렇게 서울대학에 가야 되면 부모님보고 수능 보시라고 해~ 아직 하실 수 있어~’ 했다는 너의 이야기는 지금 생각해도 통쾌하다.

네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지금처럼 빛날 것을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단다.

열아홉. 스무 살의 너의 볼은 어떤 빛깔일지 궁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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