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 오광대의 정신
[경일포럼] 오광대의 정신
  • 경남일보
  • 승인 2022.10.05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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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복 (진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송희복 (진주교대 명예교수)
송희복 (진주교대 명예교수)

 

오광대는 경남 지역에만 있는 탈놀음이다. 왜 하필 오(五)인가? 과문한 탓에 잘은 모르지만, 화수목금토인 5행, 다섯 과장, 오방신장, 오방각색 등과 관련을 맺은 것 같다. 이 오광대는 비판 정신이 매우 강한 연희 종목이다. 지리정치학적으로나 사회문화적인 맥락에서 볼 때, 조선의 경상우도, 지금의 경남이 중앙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소외감이나 소외의식이 강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합천 밤마리오광대가 오광대의 기원이었다. 밤마리가 지금은 한적하고 범속한 강마을에 지나지 않지만, 19세기만 해도 수로의 요지로서 경상도 물류와 유통의 중심지였다. 가장 번성한 장시가 서는 유월이면, 밤마리는 함양과 산청에서 온 삼베의 집산지였다. 상인들의 후원을 받은 대(竹)광대패가 강변에서 탈놀음을 했다.

이것이 신반 종이로 유명한 신반 장터의 신반오광대를 거쳐 진주에까지 흘러들어온다 진주의 고유한 연예집단인 솟대쟁이패에 의해 연행된 오광대가 바로 진주오광대였다. 영문학자이며 민속학자인 정인섭은 1933년에 이 진주오광대의 존재를 처음으로 확인했다.

오광대는 ‘고성총쇄록’과 같은 문헌에만 흔적이 남아있을 뿐, 우리가 아는 현존 오광대와 다른 원형이 있었을 것. 오광대는 조선 시대 말까지 유지해온 조창 제도와도 관련이 있었다. 경남의 조창은 가산, 마산포, 김해였는데, 모두 오광대가 있던 장소다. 가산오광대는 또 다른 진주오광대다. 그 당시의 바닷가 가산은 진주 땅이었다. 향후 조창의 장소성과 당해 지역 오광대의 상관성을 학문적으로 규명해야 한다.

오광대는 우리 전통의 벽사진경이다. 사악한 것을 물리치고, 경사스러움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기원하는 것. 일종의 주술적인 행위랄까? 19세기의 통영오광대는 통제영 향리들이 후원했다. 연행 장소는 미륵산 기슭의 용화사의 잔디밭이었다. 고성오광대는 상인들이 후원했다. 연행 장소는 고성장의 넓은 장터였다. 1910년대의 진주오광대는 기생조합이 후원했는데, 연행 장소는 어디였을까. 남강 백사장이었을까.

오광대는 합천에서 시작해 각 지역으로 향해 마치 부챗살처럼 뻗어나갔다. 길은 대체로 세 갈래 길이었다. 합천 밤마리에서 시작한 한 루트는 의령 신반에서 진주로, 또 내륙 진주에서 바닷가 진주인 가산으로 옮아갔다. 그러니까 창원과 마산을 지나 거제와 통영으로 간, 그리고 통영에서 고성으로 정착한 루트와 다르다. 마지막 루트는 더 복잡하다. 합천에서 낙동강을 넘나들면서 김해로 정착한 경우다.

오광대에는 길이 있고, 탈이 있고, 말이 있다. 길이 역사라면, 탈은 춤이요, 말은 재담이다. 온통 경남 사투리인 재담은 사회비판적인 민(民)의 재담으로 이루어진다. 그 극(劇) 중의 대표적인 재담꾼이 말뚝이다. 오광대는 유럽의 부조리극과 비슷하다. 사회제도의 구조적 모순, 인생의 부조리를 통해 비극적인 의미를 깨닫게 만듦으로써 구경꾼으로 하여금 강제로 웃음 짓게 한다. 이 웃음은 쓴웃음, 억지웃음, 마지못해 웃는 강잉한 웃음이다. 그로테스크한 표현미학의 거친 숨결이 느껴지는 블랙 유머랄까? 모순과 부조리의 불길한 블랙 코미디랄까? 민의 에너지가 드라마틱하게 잠재된 오광대의 정신이 바로 경남 정신이고, 또한 진주 정신이다. 비록 낮은 수준이라지만 봉건적 통제와 민주주의에 대한 실눈을 뜬 이 정신을 오늘에도 되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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