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당나라에서 온 두텁떡, 진주 필라
[경일춘추]당나라에서 온 두텁떡, 진주 필라
  • 경남일보
  • 승인 2022.10.06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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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이학박사
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이학박사


과거시험은 조선 선비들의 로망이었다. 천민이 아닌 이상 누구나 응시기회는 주어졌다. 평균 경쟁률이 2000대 1에 달할 정도로 치열했다. 시험에 패스하면 요샛말로 로또당첨이다.

지방 관아의 백일장은, 과거에 낙방한 유생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과거를 향한 유생들의 열망을 응원했다. 낮에 치러진다 하여 백일장이다. 수령이 주관한다.

합격자는 포상으로 독상을 받았다. 흔하게는 떡, 국수, 전유어, 과일이 한 접시씩 올랐다. 채점관들에겐 더 많은 음식을 대접했다. 그동안 수고에 대한 사례다.

풍류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보름달이 뜬 밤에 문장을 겨루는 망월장(望月場)도 있었다. 1891년 진주목 함안 군수 오횡묵의 일기에는 지인들과 함께한 시회(詩會)에서 필라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필라’는 페르시아어인 ‘Pilaw’의 음을 그대로 본 따 만든 한자어다. 당나라의 수도였던 시안은 실크로드의 출발점으로 동서양의 문화가 만나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비단길을 따라 이슬람 회족들이 이주하면서 아랍, 페르시아 음식들도 전파됐다.

필라는 헤이안 시대(710~784)에 일본으로 건너가 화과자가 되었고, 우리에겐 두텁떡이 되었다. 두꺼비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거피팥을 쪄서 간장과 꿀을 넣고 볶아 만든 거피팥고물을 뿌린 다음 찹쌀가루를 한 수저씩 놓고 소를 넣은 후 그 위에 다시 찹쌀가루를 넣고 팥고물을 얹어 찐 떡이다. 사루에 앉힐 때 소복하게 놓아 ‘봉우리떡’이라고도 했다. 두툼하게 하나씩 먹는다는 뜻으로 두터울 후(厚)를 넣어 ‘후병(厚餠)’으로도 불렀다.

근대에 들어 중국에서는 월병, 튀김만두, 라이스롤 형태의 전병 모두를 필라로 총칭한다. 게살을 넣은 해필라는 전병이고, 화필라는 꽃모양의 만두다.

진주는 흙이 기름져 벼농사가 풍부했다. 국수보다는 떡문화가 발달했다. 진주의 두텁떡은 유자를 넣어 향긋한 맛을 낸다. 남해 바람과 산소 물방울이 키운 진주 유자는 수백 년에 걸쳐 진주의 토산에 올랐다.

두텁떡은 찹쌀가루를 간장과 꿀로 비벼 체에 내린다. 유자청과 대추, 밤, 잣 등을 섞어 소를 만들어찐다. 팥고물에도 꿀이 들어간다. 공정이 까다롭고 재료도 고급이다.

교방음식은 비빔밥뿐 아니라 지역 명물로 내세울 만한 차림들이 많고도 많다. 경상도 음식은 맛이 없어도, 진주의 음식은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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