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퇴임 교수의 재능 기부를 생각해 본다
[경일포럼]퇴임 교수의 재능 기부를 생각해 본다
  • 경남일보
  • 승인 2022.10.12 15: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규홍 (경상국립대 명예교수)
임규홍 경상국립대 명예교수


나는 대학에서 퇴임한 지 여덟 달이 지나고 있다.

퇴임 전에 퇴임을 하고 무엇을 하면서 세월을 보내야 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런데 지금 퇴임 초보자로 사회에 조금씩 잘 적응해나가고 있는 듯하다.

직장에서 일정한 기간만 근무할 수 있도록 정해 놓은 것을 정년(지금 停年으로 쓰는데 실제 定年이 맞다)이라 한다. 정년은 직종마다 다른데 일반공무원은 만 60세이고, 초중등 교원은 62세, 고등교육 공무원은 65세로 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의 평균 수명이 점점 길어지고 건강 수명도 길어지니 퇴임할 나이인 60세 전후는 대부분 기력이 정정하여 일을 그만 두기에는 아까운 나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정년을 마치고 살아갈 긴 세월 동안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가 모두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면서 나는 퇴임 후 삶을 살아가는 두 사람을 떠올렸다.

한 사람은 대학 동기로 명퇴를 하고 부부와 함께 오지 우간다에서 봉사와 선교를 하는 친구이고, 다른 한 사람은 서울대병원장을 지낸 한국 명의로 알려진 권성준 교수가 강원도 양양의 작은 보건소 소장으로 간 기사다. 그들이 존경스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이처럼 퇴직 후 사회 봉사하면서 뜻깊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의외로 많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래서 그들을 생각하면서 퇴임 후 나의 삶을 뒤돌아본다. 적어도 평생 국록을 받아 살아왔고 연금으로 사는 데 크게 부족함이 없다면 퇴임 후에 사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는 없을까 하고 막연히 생각해본다. 교수는 남들이 쉽게 할 수 없는 전문, 전공 분야를 평생 연구하고 가르쳐 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 전문적 지식이나 능력을 하루아침에 단절하고 썩히면서 산다는 것은 사회나 국가나 개인으로 너무 아까울 것 같다. 더구나 퇴임하는 지인들을 보면 몸과 정신이 아직 건강하다. 어떤 이는 평생 일을 했으면 쉬지 않고 늙어서 욕심을 낸다고 뭐라 할지 모르지만 굳이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귀한 재능을 사회에 공헌한다는 의미다. 그런 기회를 지자체나 공공기관에서 체계적으로 마련해 준다면 더없이 좋겠다. 예컨대, 공기업인 LH에서 LH 토지주택박물관대학을 개설해 지역주민이 매우 적은 돈으로 수준 높은 인문학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한 것과 같은 것이다. 다문화가족이나 저소득 계층과 같은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해도 좋고 평생교육원이나 학교, 도서관 등도 좋다.

언젠가 몇몇 지인 교수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퇴임하고 난 후 ‘무료교양인문대학교’를 만들어 돌아가면서 강의를 하면 어떨까 하고 농반진반으로 이야기한 적도 있었다. 아무런 보답이 없어도 그냥 남들이 자기 말을 잘 들어주고, 자기 말에 감동하고 감화한다면 그게 평생 연구한 전문인으로서 의미 있게 살아가는 보람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귀중한 전문적 재능으로 지역민에게 인문적 소양을 길러주고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사회적으로 매우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한 마디로 말하면 지자체나 공공기관에서나 어디든 퇴임하는 교수뿐만 아니라 귀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잘 부려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특히 우리 진주는 어느 지역보다 대학을 비롯해 학교가 많은 도시다. 그래서 해마다 퇴임하는 훌륭한 교수들이 교사들이 많다. 그것도 다른 지역에서 가질 수 없는 진주만이 가진 귀한 자산이라면 자산이라 할 수 있다.

대학에서 평생 교수라는 권위로 존경을 받으면서 살아왔으니 이제 다 내려놓고 낮은 자세로 어렵고 힘든 이웃에 다가가서 자기만의 재능을 두루 나누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인생을 마지막 살아가는 작은 존재의 의미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그런 자리를 지자체나 공공기관에서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마련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러한 나의 짧은 생각이 노욕이나 노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