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1895년 진주관아의 제례, 헌관의 밥상
[경일춘추]1895년 진주관아의 제례, 헌관의 밥상
  • 경남일보
  • 승인 2022.10.13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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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이학박사)
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이학박사


조선은 인문학의 나라였다. 태조 이성계는 유교적 인재양성에 힘썼다. 세종 때에 이르면 전국 329개 지역에 향교가 세워졌다.

향교는 유교를 교육하기 위해 국가가 지방에 설립한 중등교육 기관이다. 성종 때에 전국 모든 군·현에 향교가 설치됐다. 인재를 길러 국가에 도움이 되는 관리를 키우고 고려 시대의 불교 중심 문화에서 벗어나 유교를 조선의 중심 이념으로 세우기 위해 이를 전파하고 교육하기 위함이었다.

공자와 그의 제자들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은 향교의 가장 중요한 건물이다. 위패는 죽은 사람의 이름과 죽은 날짜를 나무에 적에 놓은 것이다. 사람들은 그 위패에 영혼이 있다고 믿었다. 부임하는 수령도, 떠나는 수령도 문묘에서 인사를 올렸다.

거란의 십만 대군을 무찌른 고려의 강민첨 장군도, 조선의 재상 하륜도 진주향교에서 수학했다. 봄·가을로 공자와 선현들을 기리는 석전대제(국가중요무형문화제 제85호)를 지낸다. 아주 오래 전 삼국시대부터 내려오는 의식이다.

석전제는 지방 수령이 주관하였다. 수령에게 부과된 중대 임무였다. 오성위(五聖位 공자·안자·증자·자사·맹자)의 위패를 잘못 모시면, 감영까지 보고되어 문책을 당했다.

석전제는 술 담글 쌀을 덮는 종이만 100장이 넘는 큰 규모였다. 1895년, 진주향교의 석전제 때 술을 올린 헌관은 총 13인이었다.

밥상으로 미루어 헌관은 특별한 대우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하루 세끼 식사에 죽은 따로 제공되었다. 1인당 쌀이 45컵이었다. 달걀은 9개, 굴비는 6마리였다. 임진왜란 중 조선인 군사 1인당 소비량은 하루 21컵이었다. 헌관에겐 전시의 군사보다 2배가 넘는 엄청난 분량이 할당되었다. 이밖에도 닭, 약포, 밀가루(眞末), 젓갈, 미역, 건어 등 놀라울 만큼 풍성한 밥상이 차려졌다.

땅을 다스리는 사신(社神)과 곡식을 다스리는 직신(稷神)께 올리는 사직제도 있었다. 중국 한나라 때부터 내려오는 전통이다. 풍요와 안녕을 비는 제사다. 상봉동에 위치한 사직단에서 올렸다. 사직제의 헌관은 총 5명, 밥상은 석전제에 비해 3분의 1 수준이었다.

987년(고려 성종)에 건립된 진주 향교는 문향(文鄕) 진주의 상징이다. 126개 계단을 올라 잠시 시간을 돌려본다. 진주의 향기가 뉘엿한 가을빛에도 선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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