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진주비빔밥과 ‘탕평채’
[경일춘추]진주비빔밥과 ‘탕평채’
  • 경남일보
  • 승인 2022.10.17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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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이학박사)
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이학박사


‘조식의 사상은 바르지 못하여 그 문하에서 정인홍이 나왔다. 경상우도는 오로지 기개와 절조를 숭상하여 무신란 때 범법자가 많았으나 이황의 경상좌도는 범법자가 없었으니 등용함이 마땅하다.’(영조실록 16년 12월 5일)

1728년, 무신년의 난(이인좌의 난)은 조선을 전복 위기로 몰고 갔다. 노비 승려 백정에 이르기까지 국민의 절반이 가담했다. 그러나 곧 관군에 의해 진압됐고 가담자는 처형됐다. 미완의 혁명이었다.

진주의 남명학파는 북인 강경파였다. 광해군을 추대해 정권을 잡은 남명학파는 인조반정으로 실각했고 무신난을 계기로 완전 초토화됐다. 서인이던 노론이 정권의 중심에 섰다. 영조임금은 동서남북의 4색 당파를 골고루 등용하겠다고 공언했다. 탕평책이다. ‘서경’에 나오는 ‘무편무당 왕도탕탕(無偏無黨 王道蕩蕩) 무당무편 왕도평평(無黨無偏 王道平平)’이라는 글귀에서 유래됐다. 질시와 반목, 논쟁에서 어느 쪽에도 치우침없이 공평함을 뜻한다. 그러나 영조의 탕평책은 입맛에 맞는 신하들을 호위 삼아 왕권을 강화에 성공했을 뿐, 특정 당파에 대한 차별은 여전했다. 진주는 역차별 당한 곳이었다.

청포묵에 여러 재료를 골고루 넣어 만드는 탕평채는 영조의 탕평책에서 유래됐다. 표면이 미끄러운 묵에 갖은 양념으로 고기를 볶고, 숙주나물과 미나리를 부드럽게 데치고, 모든 재료가 잘 섞이도록 구운 김을 부수어 무친다.

탕평채의 4색은 하늘의 동서남북을 지키는 청룡(靑龍) 백호(白虎) 주작(朱雀) 현무(玄武)의 상징이다. 동인은 청룡을 상징하는 푸른 미나리, 서인은 백호의 흰빛인 숙주, 남인은 불을 상징하는 붉은 소고기, 북인은 검은 색의 김이다. 애당초 김은 없었다는 설도 있다. 북인을 아예 무시한 처사는 아니었을까.

탕평책 이후에도 극심한 차별을 받은 진주의 탕평채는 다르다. 청포묵은 녹두의 푸른 빛이 돈다고 해 붙은 이름이다. 황포묵은 청포묵 가루 1컵에 물 4컵, 천연염료 치자즙을 섞어 선명한 노란 빛깔을 낸다. 김 외에는 넣지 않는다. 진주비빔밥에도 한정식집의 단골 메뉴인 야들야들하고 여러 재료들이 섞인 탕평채가 아닌, 손가락 마디만한 황포묵 하나가 오른다. 의를 숭상하는 진주 정신이다. 책을 덮고 현실로 나아가라 했던 남명의 실학정신, 쉽게 변하지 않고, 죽음 앞에서도 의를 지켜온 남명의 기질이야말로 진주를 진주답게 만드는 동력이다. 진주비빔밥에서 또 하나의 역사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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