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짬밥’ 이라는 것
[경일시론]‘짬밥’ 이라는 것
  • 경남일보
  • 승인 2022.10.18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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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재 (논설위원·한국인권사회복지학회 학회장)
정승재 


연례로, 정기국회서 치르는 국회 국정감사가 종반에 이르렀다. 사법부도 피감이다. 수장인 대법원장을 상대로 질의하지 않지만, 개시와 종료시 각각 법사위원회에 출석하여 “존경하는 법사위원장과 법사위원”으로 시작하는 인사말이 필수다. 대법원과 전국 각 법원의 인사 등 행정을 총괄하는 법원행정처 구성원인 대법관 신분의 처장을 비롯한 각급 판사들은 통상의 재판장 위상과 달리, 체면 불구하고 법사위원들의 질의자료를 입수하는데 사활을 건다.

언변이 다져진 국회의원과 확연히 대비되는 바,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질의를 적의 대응하는 것에 어눌하다. 글로써 대체될 일이라면 감동스런 답변도 가능할 텐데 진땀이 빠진다. 대체로, 학습과 포괄적 인지능력은 질의자인 국회의원보다 상위에 있을 것 같지만 투영되는 바는 정반대다. 때때로 국회의원의 못된 일탈에 어쩔 도리가 없다. 반면에 다양한 경로를 통해 국회에 진출한 선량은 오랜 정치짬밥으로 훈련되어 요소요소에 급소를 찌른다. 물론 일부 ‘깜량’ 안되는 ‘듣보잡’들의 망상적 ‘촐랑거림’도 있지만 본인들만 그런 평가를 모른다.

정치엘리트 공급은 교육의 사회적기능, 핵심요소의 하나다. 국회의원 등 선출직 배출은 다양한 과정을 거친다. ‘먹물’ 짙은 사람도 있고, 희미한 경우도 있다. 대체로 전자가 많다 한들, 희미하다 하여 짙은 것에 못지 않은 걸출한 역정을 거친 사람이 많다. 돈 많은 사람, 그렇지 않다 한들, 사람으로 감당하기 힘든 역경을 헤쳤거나 불굴의 의지를 다진 사람도 있다. 이들의 공통분모는 뭐니뭐니해도 오랜 정치짭밥이다.

유연한 인간관계, 모욕을 참은 인내, 때로는 자기희생을 통한 상대적 배려, 비록 쇼로 보일지라도 타고난 성정(性情)의 조절, 건달같아도 돈을 밝힐 수 없는, 수익에 우선한 양보 등과 같은 이타(利他)가 요목이다. 감성을 자극하여 마음을 얻어야 하며, 그럼으로써 질시와 비난을 비켜간다. 짬밥은 정치에만 있는게 아니다. 어떤 영역에서도 찰라적 노력과 요행으로 일군 성공은 드물다. 한 분야에 적게는 5년, 대체로 10년 정도의 시련과 시행착오를 경험하고 그 맛을 보는 것이다.

생애 대부분의 시간을 지내며 스스로 특기로 다져진 직업을 뒤로한 채 새롭게 시작한 일에는 막지한 고초와 변고가 따르기 마련이다. 짬밥 부족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이다. 심판하는 직업의 판사가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정치인으로 변신하거나, 그 반대의 사정도 수많은 착오가 생긴다. 세월이 가든 말든 주어진 자기 직분만 소화하면 하늘이 두쪽나지 않은 이상 창 닫고 퇴근할 수 있는 직역의 종사자가 물정 헤아리기에 몸살을 겪는 직종으로 변신해도 상당기간 혼란을 겪는다. 마찬가지로 그 반대의 상황도 같다. 귀농과 귀촌에 이듬해 성공사례를 들어본 적이 없다.

평생 죄를 밝히고 형을 요구하는 검사로 일한 사람은 ‘새끼’라는 비속어를 달고 산다고 어느 야당의원이 말했다. 검사출신 대통령의 실수와 착오가 예사롭지 않다. 당연하다. 짬밥부족의 명징한 방증이다. 탁출한 언변에 순발력까지 갖춘 지금 법무부장관의 종횡무진은 같은 진영에 통쾌함을 준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다. 자중이 스스로에게 이롭다. 다른 국무위원은 못나서 숨죽이는게 아니다.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이너서클’ 핵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과 얼마까지 ‘끽’소리 할 수 없었던 때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 대표로 선출직인 입법부에 공격적 태세, 또한 짬밥 부족에 있다. 대통령의 ‘새끼’ 습성의 자연스런 탈색에 시간이 필요하다. 걱정이다. 짬밥이 차고 넘치는 올곧은 스탭 발탁이 절실하다. 어떤 영역이든 짬밥, 예사로운게 아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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