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현 전문기자의 씨앗과 나무] 수크령
[박재현 전문기자의 씨앗과 나무] 수크령
  • 경남일보
  • 승인 2022.10.19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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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풀에서 태어난다
 


가을이면 논둑길을 걷는 것이 즐겁지요. 이른 아침이면 안개가 모여 수크령에 물방울을 맺어줍니다. 햇살이 막 일어나는 시간이 되면 수크령에 매달린 물방울이 보석처럼 빛나요. 영롱한 빛이죠. 이런 반짝임을 본 분이라면 수크령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을겁니다. 수크령〔Pennisetum alopecuroides (L.) Spreng.〕은 화본과(Gramineae) 수크령속(Pennisetum L.C. Rich.) 식물인데요. 수크령과 붉은수크령, 청수크령이 있어요.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식물입니다. 특히 산길 가에서나 논둑길, 밭 가의 양지바른 곳에 있지요. 보슬보슬한 모양새에 강아지풀이라고 착각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수크령은 강아지풀보다 훨씬 크고 풍성해요. 씨앗들이 그만큼 더 많습니다. 이리저리 뻗친 수크령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논둑 길을 걸으면 약간은 까끌까끌한 느낌이 손끝에 닿아 묘하게 기분이 좋습니다. 거칠게 느껴지는 수크령이 부드러울 때도 있어요. 수크령의 수염과 같은 결을 따라 쓰다듬으면 그렇죠. 수크령이란 이름은 비슷하게 생긴 식물인 ‘그령(암크령)’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좀 더 뻣뻣하고 이삭이 크다는 의미에서 ‘수크령’이라고 했지요. 아무래도 동물의 세계를 보면 암놈보다는 수놈이 크고 화려한 경우가 많잖아요. 때에 따라 가끔 다르기는 해도 말이죠.

강아지풀 꽃이삭이 강아지 꼬리처럼 아래로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다면, 수크령은 커다란 꽃이삭이 하늘을 향해 고개를 꼿꼿이 들고 있습니다. 바닥에서 수십 cm 정도로 낮게 자라는 강아지풀과는 달리, 수크령은 키가 1m 남짓까지 자랍니다. 화원에서는 수크령 꽃이삭에 물을 들여 꽃장식에 이용 하기도 하는데요. 일단 키가 크니 눈길을 확 끄는 모습입니다.

아이들은 긴 수크령을 빼 들고 흔들며 장난치기도 합니다. 수크령을 한 가지 입에 물고 질겅질겅 씹으면 약간은 달달한 즙이 나오는데요. 목마를 때 요긴할 때가 있어요. 수크령이 핀 곳에 가면 튼튼한 줄기가 쭉 뻗어 커다란 꽃이 창처럼 사방팔방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이 모양이 마치 분수 같다고 해서 영어로는 수크령을 ‘분수초(Fountain grass)’라고도 부르지요. 분수대에서 솟은 물줄기가 물방울로 떨어져 내리 듯 비 온 뒤 수크령 군락을 보면 꽃이삭에 물방울이 매달려 반짝반짝 빛납니다. ‘분수초’라는 이름이 아주 걸맞은 모양새입니다. 바람결에 한들한들 나부끼지만 수크령은 아주 억센 풀입니다. 손으로는 잘 끊어지지 않거든요. 전지가위나 칼로 끊어야 할 정도로 억셉니다. 수크령을 억지로 손으로 끊으려다가는 손을 베이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풀이라고 얕잡아 볼 일이 아니지요.



수크령의 일본 이름은 지카라시바(力芝)라고 해서 ‘힘센 풀’이라는 뜻이 들어있지요. 강아지풀은 수크령에 대면 애기같은 풀이죠. 이렇게 억세고 질겨 수크령을 ‘결초보은(結草報恩)’의 풀이라고 하고, 결초보은은 수크령에서 나온 한자성어죠. 오래전 중국 진나라 군주 위무자와 첩인 서모 이야기에서 나온 한자성어인데요. 위무자가 나이가 들어 병세가 악화하자 아들 위과에게 서모를 죽여 함께 묻어달라고 했어요. 독한 사람이죠. 자기만 죽으면 될 것을, 첩을 죽여 같이 묻어 달라니요. 옛날에는 군주나 왕은 그런 경우가 있었지요. 그러나 위과는 이 말을 따르지 않고 서모를 살려주었어요. 그 후에 위과가 전쟁터에서 위험에 처하자 서모의 친정아버지 혼령이 나타나 적군 앞에 놓인 수크령을 꽁꽁 매어 덫을 만들어 주었어요. 적군이 탄 말은 여기에 걸려 넘어졌고, 그 사이에 위과는 도망칠 수 있었지요. 이 이야기에 나온 말이 ‘풀을 엮어 은혜를 갚는다’라는 의미의 결초보은이 된 거죠. 제가 어릴 때도 수크령이나 김의털을 묶어 길 걷던 친구들이 걸려 넘어지는 놀이도 했었지요. 친구가 묶은 풀에 걸려 넘어지면 깔깔거리며 놀리기도 했고요.

문효치의 ‘수크령’이라는 시가 있어요. 문효치 시인의 모데미풀이라는 시집이 참 좋았거든요. 또 우리 풀 나무에 대해 그렇게 해박한 감성으로 구워낸 시들도 많지 않습니다. 음악이 풀에서 시작되었다는 말에 저는 전적으로 동감해요. 왜냐구요? 수크령 잎을 손으로 만지며 걷는 논둑길에서는 리듬이 느껴지고 흥얼거리게 되거든요. 자연의 음악이 제 마음에 들어와 노래가 되고요. 이런 자연의 아름다운 노래가 바람을 통해 비를 통해 눈을 통해 제게로 전해지거든요. 베토벤이 산책하면서 자연의 음악을 악보에 그려 놓았듯 말이죠.



음악은 풀에서 시작된다/ 바람 끝이 닿을 때/ 맺혔던 이슬이 떨어질 때/ 풀잎은 비올라의 현이 된다// 귀를 열고 청력의 볼륨을 높이면/ 저 신의 음률을 들을 수 있다// 신은 멀리 있지 않다/ 우리가 무관심한 저 풀잎에 있다/ 거기서 노래를 만들고 있다



수크령은 눈을 밝게 하고, 혈액순환, 눈이 충혈되고 아픈 증상, 결막염, 폐열에 의한 해수, 창독, 열로 인한 기침, 해수로 인한 각혈을 치료하는 밭둑이나 길거리의 땅 지킴이죠. 이런 수크령을 충청북도 지방에서는 ‘장삘기’라고 해서 뽑아 질겅질겅 씹었죠. 군것질거리가 귀했던 시절이니 자연에서 나는 것들을 주로 먹고 씹고 했지요. 허기를 조금은 채워주었거든요. 수크령의 다른 이름에는 낭미초, 동량, 맹, 동랑, 숙전옹, 구미초, 노서근, 대구미초, 지랑풀, 길갱이라고 했어요. 뿌리와 뿌리줄기를 약으로 썼죠. 수크령 꽃말이 ‘가을의 향연’이지요. 가을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린 다음 날 아침 수크령을 보세요. 자연스레 음악이 나올 거예요. 자연의 가을 음악 말이지요.

 
 

※병뚜껑과 수관

병뚜껑은 기원전 이탈리아 폼페이 유적에서도 발견된 정도로 오래전부터 사용되었는데요. 그때는 지금과 같이 왕관 모양이 아니었지요. 지금과 같은 왕관 모양의 홈을 가진 병뚜껑을 발명한 사람은 1892년 미국 볼티모어에 살던 윌리엄 페인터(1838~1906)인데요. 그는 어느 날 병 속에 든 소다수가 상한 줄도 모르고 마시는 바람에 식중독에 걸렸는데요. 그는 병에 담긴 음료수가 상하지 않는 병뚜껑을 개발하기로 마음먹고, 병뚜껑을 모으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나사처럼 뚜껑을 돌려 끼우는 병뚜껑을 개발했지요. 그러나 이것도 단점이 있었어요. 그래서 병의 주둥이에 작은 홈을 파고 주둥이 위에 동그란 쇠붙이를 올려놓은 후 그 둘레에 힘을 주어 뚜껑을 닫았어요. 톱니가 있는 왕관 모양의 병뚜껑이 탄생한 거죠. 그러나 이것도 문제가 있었어요. 병뚜껑의 톱니가 너무 많으면 탄산음료나 맥주의 압력을 견딜 수 있었지만, 병을 따기가 어려웠고, 톱니의 수가 너무 적으면 병을 따기는 쉬웠지만, 내용물의 압력을 견디기 어려웠던 거죠. 페인터는 병뚜껑에 적당한 개수의 톱니를 그려보다가 24개의 톱니를 만들었을 때 뚜껑 열기가 힘들지 않으면서도 탄산가스의 압력을 잘 견뎌낼 수 있었죠. 1892년 페인터 부부는 톱니 24개가 있는 왕관 모양의 병뚜껑을 ‘크라운 코르크(crown cork)’라고 이름 붙이고 1894년 특허를 냈지요. 그 후 24개 톱니는 여러 번 개량되면서 지금의 21개 톱니를 갖게 되었어요. 실제로 21개보다 톱니가 작으면 뚜껑이 벗겨지기 쉽고 이보다 더 많으면 열기가 어려워진다는 걸 발견하게 된 거죠. 나무도 잎이 달린 가지 윗부분을 크라운(crown)이라고 하지요. 수관(樹冠)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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