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대책 없는 ‘전기차 화재 대책’
[경일시론]대책 없는 ‘전기차 화재 대책’
  • 경남일보
  • 승인 2022.10.25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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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기 논설위원
한중기 논설위원


전기차 시대가 열렸다. 전기차 등록대수가 30만대에 육박했고, 매년 평균 30%이상 폭발적인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으니 전기차 시대는 부인할 수 없는 대세다. 현실을 반영하듯, 얼마 전에 전기차 택시를 탄 적 있다. 깔끔하고 세련된 외관에 무소음 공간을 기대하고 승차한 지 5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몰려오는 울렁거림에 멀미를 할 지경이 되었다. 하지만, 택시기사는 승객의 불편함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전기차 자랑에 열을 올렸다. 급가·감속 기능에 대한 자랑에 침 마를 줄 몰랐다. 요약하자면, 급가속 능력이 탁월하고, ‘회생제동’ 기능이 있어 브레이크를 밟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정작 ‘회생제동’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그의 ‘미숙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승객의 불편함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회생제동’은 브레이크를 밟지 않아도 자동으로 속도를 줄이는 장치다. 문제는 회생제동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탑승객은 ‘꿀렁거림’에 멀미 같은 불편함을 겪는다. 나아가, 급제동으로 뒤따르는 차량의 추돌위험까지 안고 있다.

정부의 전기차 정책이 마치 택시기사가 회생제동장치를 제대로 조작하지 못한 채 운전하는 것 같아 사례로 삼았다. 환경부의 적극적인 전기차 보조금 덕분에 전기차 시대를 개막했지만, 촘촘하지 못한 정책으로 곳곳에서 부작용과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다. 양적 팽창에만 열을 올릴 뿐 충전소 인프라 구축과 화재대응방안은 시장에 의존하거나 국민에게 떠넘기는 형국이다. 국민의 안전이 걸린 문제인데도 방임해 놓고는 문제가 터지면 그 때 대책을 세우겠다는 식이다. 사후약방문이고 뒷북 행정이다 .

충전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한데다 안전도까지 취약한 것으로 국정감사 결과 드러났다. 전기차 충전시설의 6.1%가 부적합하고 소화시설 미설치 등으로 안전도가 크게 취약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하 주차장에서 전기차 배터리 관련 화재가 발생하면 속수무책이다. 실제로 부산과 충주의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전기차 배터리 관련 화재가 발생한 이후 아파트에 사는 국민들의 불안감이 날로 증폭되고 있다. 그러나 환경부나 소방당국은 아직도 특별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벌써 17건의 전기차 충전 관련 화재가 발생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하 주차장에 전기차 충전시설이 설치된 아파트 주민들의 커뮤니티에는 전기차 화재에 대한 불안감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설치된 충전설비를 지상으로 당장 옮기고, 전기차 화재 전용 소화기 비치 같은 화재예방 대책 수립을 요구하는 민원이 폭증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지상에 주차 공간이 아예 없는 경우도 있고, 지상에 공간 있다고 해도 전기용량이나 이전비용 문제 등으로 이전이 여의치 않다. 전기차 화재에 대비한 진압장비 문제 역시 중구난방 대책이 없다. 전기차 배터리 화재가 C급 전기화재인지, 아니면 D급 금속화재 인지조차 제대로 분류 되지 않고 있으며, 관련 법령마저 없다. 화재예방 등 안전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측에서는 난감하기 짝이 없다. 소방당국이나 전기안전 당국에 문의해도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에 따라 관리주체가 꼼짝없이 책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현행법상 D급소화기나 AVD소화기의 비치의무도 없고, 질식소화 덮개나 이동식 수조 설비 같은 화재 진압 장비가 없는 상황에서 만일의 사태가 발생하면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애먼 사람에게 덤터기 씌울까 걱정이다. 전기차 충전구역 의무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화재에 대비한 충전구역 설정방법은 물론이고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 진화설비 구축문제 같은 디테일도 함께 챙겨야 국민이 안전하게 살 수 있다. 규제와 법령만 정해놓고 책임과 비용은 국민에게 전가시켜서도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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