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옥희 (진주여성회 대표)
‘여성가족부 폐지’는 윤석열 정부 초기부터 제기되었다가 잠잠했다가 또 다시 소환되기를 반복하고 있다. 점점 낮아지는 지지율이 걱정되는지 윤석열 정부는 이제 정말 여성가족부를 해체할 모양이다. 지난 2001년 여성부가 신설되면서 정부가 주도해 성인지적 관점에서 정책과 법률 등을 제정하고 성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약자의 관점에서 평등한 민주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다각도의 노력이 여성부와 여성단체, 연구자 등과 더불어 협업하여 이어온 것이다.
여성가족부 폐지와 함께 뉴스를 뒤덮었던 또 하나의 이슈는 북한의 군사훈련으로 인한 전쟁 위협이었다. 한미군사훈련도 강도 있게 진행되었지만 그 내용보다는 북한의 도발가능성이라는 보도가 계속됐다. 다른 차원인 두 이슈가 집중되는 현상을 보면서 연결되어 있는 무언가를 생각해본다. 우리는 분단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민족분단의 역사를 소거하고 분단된 지금의 현실이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여기고, 순응하고 관망하고 살고 있는 것 같다. 여러 정치이슈 속에서 정치혐오가 느껴질 때쯤 보도되는 ‘전쟁위협’이라는 주제는 안보의식과 함께 분단현실을 상기하게 한다.
적대적으로 분리되어 두 개의 국가가 되면서 상호간의 경쟁·대립·갈등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분단의 고착화는 경쟁·대립 갈등이 만연하고 토론·협상·조정이 부재한 지금의 현실에 이르게 했다. 이데올로기와 정치권력의 대립에 기반한 분단사회는 우리에게 반공을 전제로 한 사상의 부자유와 사회적 보수성을 강요해왔다. 이 보수성은 기본적으로 여성의 인간적 권리를 희생시키는 가부장제와 전쟁에 대비해야 하는 책무를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한국 남성들의 군사주의 위에서 유지되어 왔다.
따라서 분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군사주의와 가부장제가 건재해야 한다. 여성가족부 폐지가 단순히 반여성주의 세력을 위한 선물이 아니라 분단을 고착화하기 위한 주요한 장치인 것이다. 정부는 민주사회에서도 퇴보하는 것이라는 세계의 비웃음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제 공식적으로 남성중심사회를 공고히 하겠다는 믿음을 지지세력에게 전달함으로써 현재의 보수적인 정치체제를 유지하려는 본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이 시대 한국인은 민족역사의 주인으로 자아를 의식할 수 있어야 한다. 남북분단은 1945년의 역사적 사건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서 우리의 공동체적 삶을 좌우하는 구조적 요인이 되고 있다. 이효재의 지적처럼 외세에 의해 강요된 분단사회에서 수동적 혹은 피해적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분단되지 않고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민족이나 국가처럼 인식한다면 우리의 현실을 직시할 수 없다.
이제 분단으로 인해 고착화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예리하게 파악할 때이다. 시민들이 마주하고 있는 실업, 불공정함과 차별·폭력·양극화·높은 자살율과 같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는 뒤로 한 채, 식민사관을 당당하게 드러내며, 노동자의 죽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농민들의 절규에 모르쇠하며, 권력에 기반한 폭력을 젠더갈등으로 몰며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이들의 본질을 정확하게 바라보자. 민족 간의 전쟁과 분단·군부독재·국가폭력을 경험하면서도 민주화의 역사를 이어간 주인은 바로 깨어 있는 우리, 민중이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받아 안으며 그들만의 나라로 만들지는 말자. 늘 그랬듯이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고자 하는 정의로운 시민들은 계속 생겨날 것이고, 우리는 이겨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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