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그들은 왜 이태원을 찾았나
[경일시론]그들은 왜 이태원을 찾았나
  • 경남일보
  • 승인 2022.11.03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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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옥윤 (논설위원)
변옥윤 논설위원


어느 외신기자가 한덕수총리에게 물었다, “젊은이들이 이태원에 간 것이 잘못인가요?” 죽음을 부른 참사가 그들의 탓이었는지 곱씹어 볼 화두다. 엄청난 인명피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대증적 조치와 책임자 처벌은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핼러윈을 핑계로 이태원에 모인 현상을 사회학적 시각으로 진단하고 출구를 마련하는 것이 이같은 참사의 재발을 막는 근원적 치유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참사가 일어난 날, 서울광장에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보수와 진보가 갈렸고 경찰력이 집결됐다. 그러나 더 많은 젊은이들은 주최자도 없고 특별한 이벤트가 없는 이태원에 자발적으로 모였다. 누군가에 의해 주도되는 이념이 싫고 강제되고 정해진 각본에 의해 흘러가는, 그리하여 세를 과시하는 기득권자들의 집회가 싫었던 것이다. 이태원에 가면 같은 시대,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는 젊음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카타르시스였고 쌓인 분노와 절망을 토해내는 분방함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죽음을 부를만큼 큰 잘못인가. 2-8가르마가 아니더라도, 정장슈트 차림이 없어도, 흙수저 ‘가붕개’를 구분하지 않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곳, 내편, 네편을 구분하지 않아 좋은, 자유를 만끽할 수 있고 늘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는 부모의 시선을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는 곳을 찾은 것이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돌이켜 보면 우리의 젊음은 항상 소수자였고 사회적 약자였다. 개화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주류에서 밀려나 늘 저항하는 몸짓으로만 비쳐 억압과 제도의 대상이었다. 전전과 전후로 갈리고 이념갈등에 희생되고 산업화에 청춘을 바쳤다. 청바지와 긴머리, 기타와 헤비메탈로 돌출구를 찾았다. 사회는 발전하고 소득은 높아져 선진국대열에 들어섰다고 하지만 ‘가붕개’는 여전히 ‘가붕개’이고 신분상승의 사다리는 무너져 금수저는 영원히 금수저, 흙수저는 흙수저다. 정치는 좌우,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그들이 탈출구로, 카타르시스로 표출하는 몸짓은 통기타, 청바지에 히피, 목청껏 소리지르고 주문을 외듯 중얼거리는 랩으로만 치부, 그러한 몸짓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 기성세대다. 그러나 젊음의 추구는 항상, 자유와 저항, 그리고 독립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숱한 진통과 고뇌를 이겨내고 마침내 우리사회의 주류가 되고 동량이 되어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했다. 그들은 언제나 시대의 흐름에 앞장서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했다. 그리고 늘 정의의 편이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사회는 그들이 왜 홍대거리와 이태원을 찾는지 분석하고 그들의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 좌우, 진보 보수가 아닌 중립지대를 선택할 여지를 만들어 줘야 한다. 그 중심에 자유가 있고 강요되지 않는 분방함이 있어야 한다. 서울광장이나 서초동이 아닌 해방구야말로 젊음이 요구하는 공간이다. 주최자나 흐름을 주도하는 제도화된 집회가 아닌 모이는 자체가 위안이 되고 문화가 되어 발산하고 에너지를 얻는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다만 그들이 안전하고 방해받지 않도록 장소를 마련해주는 일은 어른들의 몫이다. 양분돼 극한의 대립으로 치닫는 정치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한 불안이 그들을 거리로 내몬 것은 아닌지, 기성세대와 정치권은 반성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이번 사태가 던져주고 있는 숙제이다. 사회적 병리현상은 대증적이지만 그 기저에 있는 사회적 흐름, 그 세대의 공통된 숙제에 대한 근원적 접근이 중요하다. 이태원 뒷골목 그 좁은 비탈길에는 미처 피지도 못한 채 숨진 수많은 젊음이 있다. 우리시대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다시한번 그들이 핼러윈이라는 낯선 외래문화를 매개로 이태원에 모인 이유를 생각해 본다. “젊은이들이 이태원에 간 것이 잘못인가요.” 정곡을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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