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손녀를 안은 바보
[경일춘추]손녀를 안은 바보
  • 경남일보
  • 승인 2022.11.0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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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재 (전 서진초등학교장·청렴 및 학부모교육 강사)
박상재 전 서진초등학교장·청렴 및 학부모교육강사


젖살이 통통하게 붙은 손녀의 부드러운 볼을 내볼에 비비면 촉감이 봄바람보다 좋다. 지금 이 순간 같으면 내 품 가득히 손녀를 안고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강보에 싸여 내 품에 안긴 첫 손녀를 보는 순간 가슴이 벅차오르던 감회가 지금도 떠오른다. 이 아기가 내가 세상에 왔다가는 흔적인가 싶어 내 아들을 얻었을 때만큼 가슴이 뛰어 팔이 아픈 줄도 몰랐다.

부엌일 하던 할머니 다리를 잡고 싱크대를 넘보기 위해 앙증맞은 뒤꿈치를 들고 힘쓸 때가 엊그제인데 벌써 제 할머니 잠옷을 입는다.

갖은 애교떨며 껌딱지처럼 안기던 그 애가 이제는 밀린 숙제랑 학원이랑 다닌다고 얼굴 보기도 힘들다. 휴대폰을 사주면 좋겠지만 아이들을 못믿어 아직도 사주지 않고 있다.

저렇게 열심히 살아도 다음에 지가 원하는 직장, 지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회의가 든다. 솔직히 우리 세대는 직장 걱정을 별로 한 적 없이 살고 있다. 누가 저들을 저렇게 힘든 삶의 현장으로 내모는가….

내 친구들도 자식 둘 중 하나만 결혼시켜도 성공이란다. 일자리는 기업이 만들지 정부가 만드는 게 아니다. 일자리 찾아 수도권으로 인구가 모이니 당연히 집이 모자랄 수 밖에 없다. 집값이 천정부지니 결혼은 꿈도 못꾸고 나홀로 사니 인구감소는 필연적이다. 인구를 늘리기 위해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어도 밑 빠진 독 물 붓기다. 지금이라도 기업이나 명문대학을 지방으로 분산시켜 스러져가는 시골도 살리고 국토의 균형발전을 이뤄야 한다. 예년에는 40건이 넘던 주례 요청이 금년에는 채 10건이 되지 않아 새삼 격세지감을 느낀다.

이 좋은 가을날! 땅만 보고 힘없이 걸으며 대박의 망상에 젖어 있는 그들을 우리는 언제까지 보고만 있어야 하나. 오늘도 학원에서, 고시촌에서 컵밥으로 허기를 때우며 의미 없는 글자 밑에 줄을 긋는 젊은 영혼들에게 속삭여 주고 싶다. 힘든 지게 지고 일어날 때는 이를 악물고 안간힘을 써야 하나 일단 일어나면 조금은 수월하다고. 가진 만큼 행복한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가 부자가 되기보다는 잘사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삶이 힘들 땐 고개 들어 저 푸른 하늘을 보자! 풀은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살아 있어서 운다. 내가 첫 손녀 자랑하니 바보라고 놀리던 친구들이 자기들도 손주들 꼼지락거리는 손 잡고 보니 이제 알 것 같단다. 자기들도 나처럼 익어가나 보다. 허~허 ~허, 오늘도 손녀들 사진 보고 웃는 나는 바보인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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