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 이태원과 어영부영
[경일포럼] 이태원과 어영부영
  • 경남일보
  • 승인 2022.11.06 14: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송희복 (진주교대 명예교수)
송희복 (진주교대 명예교수)


이태원은 조선시대 역원 제도에서 비롯된 말이다. 공무를 수행하는 이에게 말을 빌려주는 곳을 역, 숙식을 제공하는 곳을 원이라 했다. 서울의 지명 중에 역원 제도의 이름이 남아있는 예는 이태원과 양재역이다. 남쪽으로 출장을 갈 때 도성을 빠져나와 첫 밤을 자는 시작점이 이태원이요, 마지막으로 귀경하는 종점이 양재역이다. 이태원은 글자 그대로 배나무가 넉넉한 숙소라는 뜻. 한편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의 이타인(異他人, 이방인)인 왜군과 청군에게 겁탈을 당한 여인들이 이타인 애들을 낳아 함께 데리고 살았다고 해서 이태원이란 말이 생겼다는 설도 있다. 또 이태원은 결국에 외세를 부르고 내정간섭의 걷잡을 수 없는 빌미를 제공한 임오군란과도 관련이 있다. 이것은 구식군대의 푸대접 때문에 일어난 군 반란 사건. 대원군이 중국으로 납치됨으로써 일단락되나, 했다. 조선 조정은 청군에게 반란 군인들을 색출하도록 부탁한다. 하층민인 군인들은 대부분 왕십리와 이태원에서 살고 있었다. 청군이 집집마다 습격해 반란군으로 의심이 되는 이들을 잡아 수십 명의 목을 잘랐다. 반란군도 그렇지 강 건너 피신하지 않고 어영부영 집에 머물다가 크게 당한 것이다.

조선 시대 구식군대 중의 어영청은 대완구를 다루던 포병부대였다. 대완구는 당시에 세계적인 수준의 무기였다. 포구가 큰 밥그릇처럼 생겼다고 해서 대완구다. 이것은 세종 때 처음 문헌에 등장한다. 성종 때는 총통완구, 순조 때는 별(別)완구라고도 했다. 이것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맹위를 떨친 것은 일본 측의 사료에도 남아있다. 내 어릴 때 부산 지역에서는 아이들이 ‘하늘대완구’라는 낱말을 일상으로 썼다. 네가 무슨 하늘대완구라고. 주로 입씨름할 때 쓰던 말이었다. 부산 수영에서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군례에 참여한 병사들의 의장용으로 시험적으로 발사하기도 했을 터. 대완구가 곡사포이기 때문에 하늘로 향해 높게 솟구친다. 경남방언사전에 의하면, 하늘대완구를 두고 최고 권력자라고 풀이해 놓고 있다. 우리 시대의 하늘대완구는? 김정은이거나, 그가 걸핏하면 쏘아 올리는 미사일이다. 인조가 쿠데타(인조반정)로 왕위에 오른 후, 자신의 친위부대인 어영청을 만들었다. 또 다른 쿠데타를 막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또 다른 쿠데타인 이괄의 난이 일어났다. 어영청 군대는 왕을 공주로 피신시키는 데 성공했다. 효종 때는 이 부대를, 청나라에게 복수하는 북벌(北伐)의 정예부대로 키웠다. 이 시기의 어영대장은 유명한 이완 장군. 이 최정예 부대가 2백년이 지나자, 개선 없는 노후 부대로 전락했다. 군기문란과 군납비리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어영청 부대를 두고 부대도 아니라고 했다. 이 말을 한자로 표현하자면, ‘어영비(非)영’이다. 이 ‘어영비영’이 ‘어영부영’이란 편한 발음으로 바뀐다. 사람이 적극적인 의사가 없을 때, 어영부영한다고 한다.

국가는 내외적으로 안전을 제공함으로써 국민에게 신뢰와 충성을 고취한다. 내적인 안전은 경찰이, 외적인 안전은 군대가 맡는다. 최근에 이태원 골목길에서 수많은 청춘들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은 대참사가 일어났다. 경찰은 대참사 앞에서 어영부영했고, 군대는 북한의 미사일에 대응하는 미사일을 오발하는 등 어영부영했다. 저게 무슨 경찰이며, 저게 무슨 군대냐, 하는 뜻의 ‘어영비영’이 아닐 수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