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장례식장을 다녀와서
[경일춘추]장례식장을 다녀와서
  • 경남일보
  • 승인 2022.11.09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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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재 전 서진초등학교장·청렴 및 학부모교육 강사
박상재 전 서진초등학교장·청렴 및 학부모교육 강사


장례는 산 자가 죽은 자에 대한 애도를 통해 그와 이별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장례는 죽은 자를 기억하는 마지막 추억의 의식이므로 이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장례를 행하는 유일한 동물”이라 했다. 그렇다. 사람이 동물이지만 동물이 사람은 아니다. 장례의 품격이 곧 그가 된다. 장례식장은 문상객의 숫자가 아닌 한 생명이 왔다가 떠나는 안타까운 이별의 장소다. 그래서 ‘인생은 원더풀! 떠남은 뷰티풀!’이 돼야한다.

영화의 ‘엔딩’과 달리 장례는 삶이 계속된다는 의미로 ‘Anding’이다. 키르케고르는 “너희는 행복했는가? 끝없는 성찰로 자기를 보듬으며 살았는가? 남들을 보살피고 동정하고 이해했는가? 너그럽고 잘 베풀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했는가?” 산 자들에게 항상 묻고 있다. ‘엔딩노트’ 라는 일본 다큐멘터리가 있었는데 감독의 딸이 아버지와 마지막 날들을 함께하며 그의 인생을 담담하게 기록한 작품이다. 자식이 부모에게 바칠 수 있는 최고의 헌사로 보였다. 돌아가신 분이 누군지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이 병원 장례식장이라는 무색무취의 공간에 모여 상조회사가 차려준 성의 없는 식사하고 ‘부조금’을 내고 돌아서는 자리에 비할 수 없는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사회적 맥락에서 장례는 산 자들을 위한 것일 수 있으나 그 의례의 중심에는 분명 망자가 있는데, 오늘 우리의 장례는 애도와 이별의 의식(儀式)이 아닌 行事(행사)가 되어 가는 것이 안타깝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왔는지, 그동안 한 부조가 얼마나 많이 회수됐는지로 평가되는 그런 행사, 이제는 좀 달라져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결혼식 주례를 자주 보는데 식전에 신랑 신부의 어릴 적 모습부터 결혼식에 이르기까지의 성장과정을 보여주는 것을 종종 본다. 장례식도 ‘망자(亡者)’ 중심으로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간단히 보여주면 좋겠다.

아무것도 모르고 찾아온 조문객들이 망자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추모의 마음이 조금 더 생기고 잡담만 하고 오는 자리에서 자기도 이 자리에 언젠가는 주인공이 될 거라는 무거운 인식 때문에 좀 더 알찬 인생을 살지 않겠나 생각해 본다.

코로나로 썰렁한 장례식장을 다녀오며 느낀다. 이제 우리의 장례문화도 먹고 마시고 잡담하며 상주 얼굴에 도장 찍고 오는 문화에서 조금은 변해야 하지 않겠는가. 발밑에 부서지는 낙엽을 보니 내 인생에도 가을이 오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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