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도서관에 공산당 책은 차고 넘치더라
[경일포럼]도서관에 공산당 책은 차고 넘치더라
  • 경남일보
  • 승인 2022.11.16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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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점석(경남작가회의 회원)
전점석(경남작가회의 회원)


아무런 편견 없이 사는 게 쉽지 않다. 소설가 정광모는 흔히 자신을 독립된 존재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태어나는 순간에 이미 인간사회가 만든 거대한 그물에 갇혔다고 한다. 대부분 그물에 갇혀 있으면서도 그물의 존재를 모르니 갇혀 있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설사 알았다 하더라도 그물은 생각보다 단단하게 우리를 동여매 움직이기가 힘들다. 튼튼한 그물을 벗어나서 진정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모르고 사는 게 편할지도 모른다.

대학교 2학년 때였다. 우연히 금서, 금지곡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물이었다. 그리고 그걸 어기면 붙잡혀가서 신세 조진다고 했다. 시내에서는 총 든 군인이 불심검문하러 버스에 올라와서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의 가방을 보자고 하고, 차에서 강제로 내리게 한 적도 있었다. 금서목록을 보니 대부분 처음 보는 책이었다. 공대생인 내가 알 턱이 없었다. 그런 책이 있는 줄도 몰랐다. 금지곡 목록을 보니까 뜻밖에도 내가 아는 노래가 포함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양희은의 아침이슬, 송창식의 고래사냥, 이미자의 동백아가씨가 목록에 있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런데 이런 노래는 이미 많이 부르고 있었다. 금지곡이라 하더라도 심심하면 자기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게 노래이다. 도대체 이런 금서, 금지곡 목록을 누가, 무슨 이유로 만드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론 정부에서 보지 말라고 하면 안 보고, 부르지 말라고 하면 안 부르면 되는 일이다. 간단하다. 그 정부가 어떤 정부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잘 모르니까. 그런데 우연히 책과 노래뿐만 아니라 매일 배달되는 신문과 잡지, 단행본 출판물도 빠짐없이 검열되고 있다는 걸 알고부터는 나라를 위해서 금지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71학번인 내가 대학 다닐 때의 일이다. 보라는 것만 보면서 살아온 내 자신이 착한 것 같기도 하고, 숙맥인 것 같기도 했다. 이때껏 내가 공부한 건 세상의 절반이었다. 그동안 내가 갇혀 있던 우물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손바닥 만한 것이었다. 속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유로운 상상력을 갖지 못하게 나를 억누른 부당한 힘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금의 우리 사회에는 금서, 금지곡 목록이 없다. 보면 되고, 안되고를 강제하지 않는 세상이다. 그런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개인의 판단을 믿는 자유로운 세상이다.

그런데 창원시의원 한 분이 지난 9월에 도서관사업소 행정사무감사를 하면서 도서관에 비치된 책이 ‘좌경화돼 있다는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자기가 도서관에 들러 직접 확인해 봤다면서 “역대 대통령이라든지 각 나라 위인이라든지, 이런 분들 책이 많이 들어와 있는데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공산당 책이 차고 넘친다. 심지어 김일성·김정은 이렇게 다 있는데, 그분들도 지도자이지만 이승만·박정희 등 우리나라 지도자도 많이 있다”며 “(하여튼) 이렇게 이념적인 것으로 구분이 돼서 도서 배치가 많이 돼 있다. 또 검색하니까 (우리나라 지도자 책은) 나오지 않더라”고 말했다. 이어서 “이걸 구분 지어서 하긴 좀 그렇지만 왜 공산당 책은 차고 넘치는지 (모르겠다)”며 “자료실에 있는 책들, 도서관마다 구비돼 있는 책들, 이런 말씀 드리긴 좀 그렇지만 좌경화돼 있지 않나.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만약 이 말이 사실이라면 큰일이다. 왜냐하면 좌·우를 모두 읽어야 전체를 알 수 있는데 골고루가 아니라 한 쪽만 차고 넘치면 그쪽으로 치우친 편향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공산당 책’이 차고 넘치는 도서관이 어디인지 궁금하다. 그분이 가리키는 ‘공산당 책’의 제목과 지은이가 누구인지도 궁금하다. 이 말이 사실이 아니라도 큰일이다. 왜냐하면 상대방을 공격하는 방식이 색깔론이기 때문이다. 이런 분들은 책뿐만 아니라 자기 주변의 사람들도 좌우, 흑백으로만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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