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당대 최고의 예술원, 진주 권번의 ‘해삼통찌짐’
[경일춘추]당대 최고의 예술원, 진주 권번의 ‘해삼통찌짐’
  • 경남일보
  • 승인 2022.11.17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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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이학박사)
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이학박사


진주 권번은 당대 최고의 예술원이었다. 국악의 창시자 기산 박헌봉을 비롯해 이선유, 유성준, 김정문 같은 쟁쟁한 명창들이 중심에 있었다. 머리를 곱게 땋은 권번 아가씨들은 말 한 마디 함부로 건넬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권번 기생들을 기억하는 진주의 노유분들은 어느덧 구십을 넘기셨다. 권번 앞 인력거에 화초기생이 올라타는 모습을 보고 밤잠을 설쳤던 설창수 소년도 고인이 되셨다. 진주 권번이 전통 예술의 구심점이 된 것은 해방 후까지 명맥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 출신들은 인근 마산, 통영, 부산과 연합해 놀음팀을 결성했다. 이 시기에 같이 활동한 인물 중에는 진주검무와 진주교방굿거리춤 예능보유자였던 고 김수악 선생도 있었다. 입학하려면 월사금도 비쌌지만 스승님들의 입맛도 잘 알아야 했다. 권번 스승들은 예술적 감각이 섬세해 입맛도 까다로웠다. 유년기부터 권번에서 자란 정영만 선생(남해안 별신굿 예능보유자)은 스승 접대를 도맡았다. 어쩌면 진주 교방음식의 마지막 전수자다. 1895년 진주 관아에서 개설한 중앙시장을 중심으로 간판 없는 육회 비빔밥집들이 즐비했다. 해방 전후 외식으로 등장한 냉면도 인기를 끌었다. 요릿집에서는 접시 두 개를 손에 들고 딱딱 소리를 내며 추는 인도네시아 접시춤이 인기였다. 가무도, 음식도 조선의 전통을 사수하고자 했던 곳은 권번이었다. 특히 진주비빔밥은 진주 관아에서 내려오던 방식대로 만들었다. 고사리, 숙주, 도라지에 담긴 뜻도 스승들께 배웠다. 밥은 좋은 쌀로 고슬고슬하게 짓는다. 고기 육수 따위는 넣지 않는다. 진주비빔밥은 전통 그대로의 맛이 가장 훌륭하다.

권번의 별식 중엔 해삼통찌짐이 있었다. 찌짐은 부침개의 경상도 방언이다. 표준어는 해삼완자전이다. 사포닌 성분이 풍부한 해삼은 바다의 인삼이다. 반으로 갈라도 되살아난다. 본격적인 해삼철인 11월, 손으로 눌러 단단하고 돌기가 굵은 해삼을 고른다. 해삼의 배를 갈라 속을 파내, 밀가루를 살짝 뿌리고 소고기, 두부, 조갯살을 다져 속을 채운다. 번철에서 바로 꺼내 뜨거울 때 먹어야 제 맛이다. 해삼통찌짐은 밀가루에 치자 물을 들여 노랗게 부친다. 해삼의 거무스레한 색을 치자가 덮는다. 진주 기생의 연회복도 노랑저고리였다. 노오란 해삼통찌짐에 진주 기생의 그림자가 일렁인다. 정실로는 들어갈 수 없었고, 소실로 갔다 해도 되돌아 오곤 했던 그들. 만년 혼자임을 상징하는 처연함의 빛깔, 기생의 노랑저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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