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껍데기는 가라
[경일포럼]껍데기는 가라
  • 경남일보
  • 승인 2022.11.20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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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규 (진주향당 고문)
황경규 진주향당 고문


신동엽 시인은 ‘껍데기는 가라’는 시(詩)를 통해 군부 독재 체제의 시대 상황 속에서 부정적인 세력은 물러가고, 순수와 열정의 시대가 도래하기를 소망했다. 이른바 ‘껍데기’로 상징되는 허위와 술수, 겉치레는 사라지고 ‘알맹이’만 남기를 간절히 바라는 시인의 마음은 시대를 초월한 명제로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아직도 껍데기가 판을 치는 세상이긴 하지만 말이다.

‘방송은 상대적으로 소수이거나 이익추구 실현에 불리한 집단과 계층의 이익을 충실하게 반영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방송법 제6조 5항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어디에 거주하든 지역간 혹은 지역 내에서 평등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삶의 기회를 향유할 권리를 가진다.’ 헌법 제11조이다.

작금의 상황을 보면, 방송법 제6조 5항과 헌법 제11조는 아무도 지키지 않는 빈껍데기, 혹은 쓰레기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 명백하다. 헌법과 방송법이 지니고 있는 정신을 유린하고 조롱하는 집단적 광란이 지역에서 횡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분노하는 일 외에는 그 어떤 대책을 세울 수 없다는 점이 더 화가 난다. 이제는 그 모질고 모진 인내심도 바닥이 날 지경이다.

MBC가 최근 진주MBC를 ‘보조 방송국’으로 강등시키고, 진주 연주소를 폐소하는 동시에 창원MBC 연주소와 통합하는 내용의 변경허가를 신청했다. 진주시민의 정성으로 만들어진 진주MBC가 창원MBC와 강제로 통폐합되고, 뒤이어 KBS진주방송국이 방송 통폐합으로 소위 껍데기 방송국으로 전락한지 얼마되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같은 상황은 대한민국의 언론들이 지역시청자들과 방송법을 얼마나 쓰레기 취급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지역사회가 크게 분노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서부경남 주민들을 우롱하는 처사임과 동시에 시청자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박탈하는 행위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안이 지역의 언론환경을 악화시키고, 헌법이 보장한 평등한 삶의 기회를 앗아가는 악의적인 행태라는 점에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미 앞서 시도된 KBS와 MBC의 통폐합을 통해 충분히 학습한 결과이다.

단언컨대, MBC는 ‘진주MBC’를 껍데기 방송국으로 만들려는 시도를 지금 당장 중단해야 한다. 만약 전면 백지화하지 않는다면 진주시민들이 진주MBC에 가졌던 애정을 훌쩍 넘어서는 거대한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MBC시청 거부와 광고제공 거부 등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실행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 역시 현명한 결론을 내려야 한다. MBC의 이번 조치의 이면에 지역방송의 공공성과 공익성 구현 따위는 아예 머릿속에 들어있지도 않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번을 계기로 공영방송으로서 올바른 길을 걷고 있는지도 분명히 확인해야 한다. 의지만 있다면 MBC가 공영방송인지의 여부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방통위는 지역민의 여론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진주MBC 통폐합 시도’를 정중하게 반려하기 바란다. 언론의 실핏줄인 지역방송을 죽이는데 그치지 않고, 종국에는 대한민국의 언론을 죽이는 일이기에 그렇다. 방통위가 현명한 판단을 하리라 굳게 믿고 있다.

공영방송을 자처하는 MBC 역시 스스로를 뒤돌아보아야 한다. 과연 공영방송을 자처할 자격이 있는지를 말이다. 그리고 이제는 지역방송국을 키우거나 차라리 종편을 보는게 낫다는 지역민들의 여론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지역민의 신뢰를 잃은 언론이 갈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끝내 MBC가 진주MBC통폐합 시도를 중단하지 않는다면, 진주에 설 자리는 없을 것이다.

신동엽 시인이 말했다. ‘껍데기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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