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호밀밭 파수꾼의 소환
[경일포럼]호밀밭 파수꾼의 소환
  • 경남일보
  • 승인 2022.11.21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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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술 (경상국립대 교수)
윤창술 경상국립대 교수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이 소환되었다. 그 이유는 까칠한 주인공이 고백하는 명대사 때문이다.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이번 참사를 겪으면서 우리는 두 번 놀랐다. 먼저 ‘어떻게 대한민국 서울의 중심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였다. 또한 가장 먼저 현장에 달려가 한 명이라도 더 구하려 헌신했던 소방관들에게, ‘형사책임을 지라고 하니 무슨 일인가’이다. 근래에 인도네시아 축구장에서 130여 명이 압사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만 해도 우린 선진국이고, 저런 나라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에 국민소득 3만 달러의 나라. 삼성, 현대, LG 같은 글로벌 브랜드를 보유한 나라. ‘BTS, 미나리, 오징어 게임’ 등 전 세계가 열광하는 K팝과 K무비의 나라이니 우쭐할 법도 하다. 그런데 우리가 알던, 안다고 생각했던 사회안전 수준의 민낯이 비극적인 형태로 드러났다. 가족을 잃은 슬픔과 분노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우리 각자는 모두 무언가를 잃었다.

‘선진국’ 취기에서 확 깨어난 느낌이다. 본 참사에서 드러난 정부의 능력은 유능함과는 매우 거리가 멀다. 전문가들로 꾸려진 내각이라고 자랑하던 말이 참으로 무색하다. 그들이 유능한 전문가였다면 사전 위기 징후를 무시하지도, 지원 요청을 묵살하지도, 참사 후 “주최자가 없어 대비하지 못했다”는 주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민낯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개선해 나가야 하는데, 늘 그래왔듯 처벌과 법 개정만으론 해결할 수 없다. 법 영역밖에 더 많이 존재하는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지키려면, 공공영역의 체질과 마인드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헌법상 국가의 최고의무는 국민의 생명보호 의무이다. 헌법 제7조에는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의 최일선에 선 정부는 슬픔에 대한 책임감도 공감대도 보여주지 못했다. 이는 인과적 사고보다 응보적 사고에 익숙해서 그렇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조직화된 무책임’이야말로 국민적 분노의 비등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본 참사에서 국민은 정부의 형사책임만을 묻는 것이 아니다. 헌법상 국가의 의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계속 머뭇거리면 배가 산으로 갈 수 있다.

법에 명시되지 않아도 법이 커버하지 못하는 위험까지 막을 수 있어야 진짜 선진국이다. 구름 인파가 모일 것 같으면 관계기관은 본능적으로, 자율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참사를 겪었고, 그로 인해 두꺼운 법령과 많은 처벌조항을 갖추어 왔다. 그럼에도 우리에겐 그런 선진국형 시스템, 법에 없어도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지켜내는 무형의 동력이 없었다. 국정 운영 기조의 전면적 쇄신이 필요하다. 대통령실에 리스크 전체를 관리하는 컨트롤타워와 브레인을 두고 무한대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 각 지자체도 마찬가지다. 대통령과 정부 여당은 권력을 ‘자기’ 권리로 착각해서는 안되고 직책을 완전하게 수행하기 위한 ‘편의 제공 차원’의 권리라는 걸 인식해야 한다. 가장 먼저 현장에 달려가 분투했던 소방관들에 대해 ‘더 구하지 못해 형사처벌 하겠다’라는 무지막지함을 드러낼 것이 아니라 소방관의 파수꾼 정신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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