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수령의 생일, 쌀밥에 고깃국으로 관속들을 먹이다
[경일춘추]수령의 생일, 쌀밥에 고깃국으로 관속들을 먹이다
  • 경남일보
  • 승인 2022.11.24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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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이학박사)
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이학박사


어진 수령은 백성의 큰 그늘이었다. 진주에는 종2품 병사와 정3품 목사, 그리고 14개 속현의 종4품 군수와 종6품 현감이 포진되어 있었다. 진주목 수령들이다. 속현의 수령이 행차할 때는 주막에서 숙박을 해결했다. 주막은 뉴스의 집결지였다.

주막의 환경은 형편없었다. 모기가 극성을 부리는 주막에서 더디고 더딘 밤을 앉은 채로 새웠다. 그러나 호랑이에게 물려간 주민의 이야기나 화적당이 행인들의 짐을 모두 도둑질해간 소식 따위를 들을 수 있는 곳은 주막이었다. 한 그릇 율무죽에 담긴 주모의 인정도 객의 마음을 적시는 온기였다.

흉년이 들면 민심도 점점 흉흉해져갔다. 무뢰한들은 마을 요지에 첩을 두고서 술을 빚고 개를 잡아 노비들을 꾀어내 진탕 먹였다. 그들은 노비들이 돈을 갚지 못 할 지경까지 먹여 노비가 주인집에서 도둑질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갔다. 거지들이 동냥밥을 요구하다가 성이 차지 않는다는 이유로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은 배고픔이 죄였다.

조선시대 수령은 부임지에 가족을 데리고 가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경남은, 한양에서 내려오는 수령들에게는 먼 곳이었고 수령은 타향에서 홀로 생일을 맞았다. 수령의 임기는 통상적으로 2년이었다. 수령은 일상에서 기생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수령의 생일이면 관아 반빗간은 분주하다. 아전의 수장인 이방도 한 상 가득 차려 들여온다. 수령은 이를 만류하며 관아의 주방에 명해 삼반관속들에게 각자 한 상씩을 차려주고 막걸리도 한 동이 지고 오라 하여 배불리 먹인다. 장교(將校), 관노(官奴), 사령(使令)은 난데없는 쌀밥과 고깃국에 기쁨이 넘쳤다.

오후에는 이청(吏聽, 아전들의 처소)에서도 성대한 다담상을 들인다. 수령은 선물에 소주세 복자를 더하여 향회(鄕會 고을 양반들의 모임)로 보낸다. 수령을 칭송하는 양반들의 사례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음식을 내려주는 것도 지나친 바람이거늘, 몸소 임하셔서 가르침을 내려주시니 지극히 황감하여 고개도 못 들겠습니다.” (함안 총쇄록’ 1889년 12월 무술)

답례로 곶감을 바치는 자도 있었고 대구와 문어도 관아로 들어왔다. 해물과 과일이 어지러이 쌓인다. 곶감은 열 접이나 된다. 정당한 것은 받고 명분이 없는 것은 물리친다. 이것은 하인들의 몫이 될 것이다. 닭 한 마리와 담배, 복분자 한 묶음도 보내왔다. ‘비록 졸렬하나 한가한 때 잡수시라’는 뜻이 담긴 선물이었다.

문신 오횡묵의 총쇄록에는 아전, 죄수, 노비, 관기에 이르기까지 197명의 직명과 이름이 등장한다. 대서사시다. 500페이지가 넘는 장서 속에 진주목 관아를 중심으로 한 문화와 음식이 고스란히 간직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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