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
[경일포럼]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
  • 경남일보
  • 승인 2022.12.05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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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복 (진주교대 명예교수)
송희복 (진주교대 명예교수)


2022년 월드컵 조별 예선이 끝났다. 동아시아의 한국과 일본이 예선을 사이좋게 통과했다. 두 나라의 예선 마지막 경기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유럽의 강호를 상대로 2대1로 역전한 게 닮은꼴이다. 우리가 포르투갈에 경기 초반에 골을 빼앗길 때, 나는 3대0 가겠구나 했다. 이때 주장 손흥민이 후배들을 독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쓴맛에도 뒷맛이 있다. 전반전에 한 골을 만회한 이후에 긴 시간 동안 팽팽한 공방을 벌였다. 후반 추가시간에 손흥민이 70m를 질주했다. 수비수 세 명이 그의 주변에 몰렸다. 수비수 가랑이 틈새로 절묘하게 찔러준 패스가 황희찬의 골로 연결됐다. 그는 이 경기에서 9개 슈팅 중에서 6개를 주도했고, 골은 비록 얻지 못해도, 골보다 소중한 어시스트를 연출했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법이다. 손흥민이 기다랗게 우물을 팠다면, 황희찬이 두레박을 걷어 올렸다. 스페인도 포르투갈처럼 절박하지 않았다. 비기면 올라갈 수 없었던 일본이 2대1로 역전할 수 있었던 건 목마름이었다. 일본은 이번 대회에서 전차부대 독일을 녹슬게 만들었고, 무적함대 스페인을 2선으로 후퇴시켰다. 독일과 스페인은 21세기 축구의 상반된 전술을 완성시킨 팀이다. 독일은 상대를 전방위로 압박하는 ‘게겐프레싱’으로, 스페인은 짧은 패스로 주고받는 ‘티키타카(주고받음의 의태어)’로 2014년 월드컵과 2010년 월드컵에서 각각 정상에 우뚝 섰다. 우리나라 벤투 감독은 소위 ‘빌드업’ 축구의 신도였다. 4년 동안, 그의 소신에는 변함이 없었다. 빌드업이란, 볼 점유율을 최대한 높이면서 공격의 기회를 얻는 과정 중심의 축구다. 건축 개념으로는 공정(工程)의 개념이다. 이 개념이 선수들의 동선과 패스를 가리키는 총체라는 점에서, 모든 축구는 한마디로 빌드업이다. 어떤 성격의 빌드업인가가 중요하다. 축구에서의 골인은 결과요 완공(完工)이다. 결과론적으로 볼 때, 볼 점유율보다 골 결정력이 지배적인 실효성을 지닌다. 우리는 가나보다 두 배 가량의 점유율에도 불구하고, 3대2로 패했다. 독일과 스페인이 일본에게 진 것도 마찬가지였다. 일본과 코스타리카는 전반에 서로 탐색하다가 후반을 기약했다. 일본은 스페인에게 7대0으로 진 코스타리카를 우습게 알고, 후반이 되자마자 폭풍처럼 몰아쳤다. 후반에 14개의 슈팅을 때리고도 실속을 챙기지 못했다. 코스타리카는 단 하나의 슈팅을 골로 연결시켜 1 대 0으로 이겼다.

빌드업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손흥민은 10분의 1 지분의 필드 요원에 지나지 않고, 이강인도 후반에 투입되는 반쪽짜리 선수에 다름없다. 상황에 따라 ‘빌드다운’도 긴요하다. 축구에는 이 용어가 없다. 내가 굳이 말하자면, 조급한 공격을 잠정적으로 유보(혹은 폐기)하는 전략이다.한국과 일본은 이번 조별 예선에서 상대의 허를 찌르는 역습의 묘수로써 선진 축구의 벽을 넘어설 수가 있었다. 빌드업이라고 하니까, 개발 시대의 느낌이 있다. 빌드다운은 본디 군사 용어다. 신무기를 개발하면 오래된 무기를 단계적으로 폐기하는 걸 말한다. 스포츠가 스포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만, 우리 사회도 새로운 가치를 위해 기존의 가치를 점차 폐기해 나아가는 건 어떨까? 예컨대, 관계나 조직력보담, 개성과 창의력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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