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인의 에세이는 픽션을 입는다 (48)보는 눈 듣는 눈
배정인의 에세이는 픽션을 입는다 (48)보는 눈 듣는 눈
  • 경남일보
  • 승인 2022.12.06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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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분이 길에서 만나서 어디 가느냐고 물어서 글쓰기 공부방에 간다고 했더니, 어느 서실에 다니느냐고 묻는 거예요. 고쳐서 대답해야 했지요. 글짓기 공부방에 간다고.

사실 ‘쓴다’는 펜으로 종이에 글자를 새기는 작업을 의미합니다. 그러함에도 ‘글 한 편 써 주십시오’ 예사 이렇게 말합니다. 그 사람 글 쓰는 사람이야, 그러지요. 여기에 ‘써’는 ‘지어’일 것입니다. 설사 사실을 그대로 기록해야 하는 신문 기사라 할지라도, ‘그대로 쓴다’는 어렵거든요. 쓰는 이가 보고 들은 걸 생각이라는 과정을 거치면, 종이에 쓰는 글줄(문장)은 짓는 게 됩니다. 넓은 의미로 보면 글은 쓰는 것이 아니라 짓는 거지요. 그게 말꽃이라면 더 말하여 무엇하겠습니까?

배우다 보면 이미 만들어져 있는 뒤주에 갇히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글 짓는 법’이라는 걸 들어 가르치는 이가 배우는 이에게 ‘수필 그렇게 쓰는 거 아니야!’와 같이 시도 소설도 이러면서 아성을 쌓아 권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배움이들의 머리를 ‘그러면 안 돼’라는 고정관념에 빠지게 해 창의력을 죽이는 행위를 하면서도, 자기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는 모릅니다. 이건 단순한 갑질을 넘어 가스라이팅 하는 거지요. 글짓기를 가르친다는 핑계로.

이 못된 짓을 대를 이어 하고 있습니다. 이거 사투리잖아. 표준어가 아니잖아. 이런 안다니 뚱딴지가 범죄행위임에도 그걸 오히려 자랑삼고 권위로 여기는 꼰대들이 많습니다. 관행이라면서. 네 가지 말을 쓰는 스위스는 공용어라고 하고, 땅이 넓어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차이니스는 보통화라 하고 통역이 필요할 정도로 다른 광둥성 말은 ‘광둥위’라고 한다고 합니다. 지구상에서 표준어라는 말을 쓰는 나라가 한국 말고는 없다고 하네요. 이런 나라에서 글짓기를 제대로 하기란 쉽지 않지요.

글짓기에 대해서 이태준 선생은 이런 지적을 했습니다. -‘쌀은 곡식의 하나다. 밥을 지어 먹는다.’ 선생이 이런 문례(文例)를 주면 ‘무우는 채소의 하나다. 김치를 담가 먹는다.’ 이런 문장을 써놓아야 글을 잘 짓는 학생이었다.- 이렇게 가르치고 배워서 이렇게 쓴다고 합니다. - ‘양자강(揚子江) 이남에서 ‘상엽홍어이월화(霜葉紅於二月花)’라 한 것을 2월 달에 꽃이라고는 냉이꽃이나 볼지 말지 한 조선에 앉아서도 허턱 ‘만산홍수(滿山紅樹)’가 ‘유승이월화진(猶勝二月花辰)’이라 하였다. 뜻이 어떻게 되든, 말이 닿든 안 닿든,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오직 글을 지으면 된다.-

멋지게 쓰느라 ‘말이 닿든 안 닿든’ 생각 없이 끌어다 쓰는 얼빠진 행태를 나무라고 있습니다. 옛일이 아닙니다. 지금도 더더러 이런 글들이 있지요. 지식은 공유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표절 시비도 생기고, 저작권 침해로 쌈도 하게 됩니다. 이 병폐에서 벗어나려고 글쟁이들은 끝없이 노력합니다. 그 방법이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길이지요.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 사유하고 상상하는 고뇌를 감내하는 거지요.

학문하는 분들은 앞 사람의 이론에 바탕해 새로운 이론을 전개하면서 발전해가야 하는 이른바 학통을 이어감이 중요한 일이지만 말꽃은 말 그대로 말에 한 송이 한 송이 다른 꽃을 피우는 일입니다. 꽃은 오직 한번 피고 죽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피어나는 꽃은 없습니다. 언제나 새로 뻗은 가지 끝에 새로 피지요. 풀도 나무도 꽃은 만들지 않습니다. 짓습니다. 새로 지어서 올립니다.

새로 짓는다는 따라 쓴다가 아님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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