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칼럼] 가을의 患(환)
[농업칼럼] 가을의 患(환)
  • 경남일보
  • 승인 2022.12.07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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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쯤이면 수확이 끝나야 할 감나무 밭에는 아직도 붉은색이 물들어 있다. 농부는 간 데 없고 온갖 새들이 늦가을 만찬을 즐기고 있다.

올해 감농사는 망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풍년이라 수확을 포기했다. 감 생산량이 너무 많아서 팔수록 손해만 늘어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곳곳에서 농부들은 퇴비값에도 못 미친다고 아우성이다. 포도송이처럼 매달려 있는 감을 보노라면 괜히 심술이 난다.

“처음부터 네가 감당할 만큼 적당히 열고 튼실하게 키웠으면 제값을 받고 농부도 신이 날 텐데, 어찌 감이 아니고 탱자가 되었느냐?” 이에 감나무는 “무슨 소리? 한창 과일이 성숙하는 시기에 비가 적당히 내려야 조절할 수 있는데 올해는 유난히 가뭄이 심해 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 강변한다. 사실 감나무 말이 맞다. 가뜩이나 소비가 안 되는 상황인데 날씨까지 이상하니, 이미 가격하락은 예견된 일이고 새삼스러울 게 없다. 그러나 주인으로서는 억울하다. 겨울철 감나무 전정 작업부터 퇴비 넣고 수차례 병해충 방제, 제초 작업 그 많은 땀방울과 농사비용은 어디서 보상받을 것인가.

참으로 답답하다. 가격이 오른다 싶으면 흉작이라 팔 농산물이 없고, 농사가 잘 된 해에는 곤두박질치는 농산물 가격에 농부의 마음은 애가 탄다. 그 좋은 공기 마시며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말고 농부처럼 배짱 좋은 직업이 어디에 있느냐며 허울 좋은 소리를 하지만 농부의 애환을 알고 하는 소리인지?

시기를 놓치면 한해 농사를 망치고 그러다 보니 공휴일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농촌진흥청 자료에 의하면 10명 중 6명 이상이 주 6일 이상 근무한다. 그래서일까? 시골에는 연세 많은 남자를 보기 어렵다. 대부분 할머니다. 유추하건대 1년 내내 날씨, 병해충, 농산물 가격에 농부의 근심과 걱정이 끊이지 않는 스트레스 때문은 아닐는지. 때론 몸에도 좋지 않은 술과 담배로 스스로를 위로하지 않았나 싶다. 이 농부의 환을 누가 알아주겠는가. 땅은 정직하고 배신하지 않는다 했다. 그러나 농부를 농락하고 힘들게 하는 것은 수없이 도처에 늘려 있다.

11월 24일, 25일 평소 같았으면 감 수확을 끝냈을 시기인데, 아직 절반도 못 딴 감을 그냥 두고 보기에 안타까워 행여나 가격이 오르지나 않았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틀 밤낮으로 수확해서 50박스를 도매시장에 출하했다. 월요일 새벽 5시경 어김없이 전화벨은 울렸다. “사장님 50내가 5000원, 40내가 6000원, 30내가 7000원 총 40박스 18만원인데 판매할까요?” 10㎏ 대봉감 1박스가 짜장면 한그릇 값에도 미치지도 못하는 현실 앞에 아연실색했다.

조금 있다 결과를 알려 줄 테니 보류하라고 했지만 운임 들여 회수해 온다는 게 싶지 않은 터, 울분을 삼키며 다시 전화를 했다. “그냥 파세요. 좀 너무하는 것 아닙니까? 다음에는 절대 이 시장에 출하하지 않겠다”며 엄포를 놓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이 올 리 만무하다. 직장생활을 하며 제대로 된 취미 생활도 없이 이런 생활이 맞나. 나이는 계속 들어가고 주변 친구들로부터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을 들어가며 계속해야 하는지 머리는 복잡해졌다. 그래 올해는 정리를 좀 하자.

반 어중개비(어정잡이) 농사를 할 바에야 이참에 내 과수원이라도 정리해야 진성 농업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그리고 감나무야 미안하다. 주인 잘 못 만나 괜히 생명을 단축시키니 말 못하는 나무라지만 상심은 참으로 클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니 용서를 구한다.

오늘 아침 최저 온도가 영하로 내려갔다. 아직 따지 못한 감은 얼어서 수확이 불가하고 먹을 수도 없단다. 아, 이제야 가을이 떠나는가? 농부에게 수많은 환(患)을 안기고 가는 이 가을이 너무 야속하다. 부디 바라옵건대 내년에는 기뻐하며 맞이하는 ‘가을의 歡(기쁠 환)’으로 돌아오라. 그리해 농부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퍼질 수 있게 말이다.

박성규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의령사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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