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안 뛰면 재미없다’는 MZ세대
[경일시론]‘안 뛰면 재미없다’는 MZ세대
  • 경남일보
  • 승인 2022.12.13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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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기 논설위원
한중기 논설위원


달리기는 창의적 행위다. 긴 시간 동안 달리는 것은 결코 ‘시간 죽이기’가 아니다. 달리기에 빠져 본 사람들은 다 안다. 숨이 헉헉 차는 힘든 고통을 참고 달리다 보면 어느새 딴 세상이 열린다. 에너지가 샘솟는 찰나의 순간, 러너스 하이도 맛볼 수 있다. 난마처럼 얽힌 일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고, 창의적 아이디어가 요동친다. 이 보다 더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비단 필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세계의 러너들이 경전처럼 읽고 있는 ‘달리기와 존재하기’의 작가 조지 쉬언도 그랬다. “글을 쓰기 위해 달리는지, 달리기를 위해 글을 쓰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 달리기를 하면 딱 맞는 단어와 구절과 문장이 떠오른다. 마치 슬롯머신을 잡아당기는 기분으로 달리다 보면 한 편의 칼럼이 완성된다”고 했다. 진실을 찾으려면 의식 아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야 하고, 그러려면 고독해져야 하는데 달리기가 제격이라면서 달리기를 예찬했다. 달리기가 얼마나 좋았으면 무라카미 하루키는 ‘적어도 끝까지 걷지 않았다’는 묘비명을 남기고 싶다 했을까.

팬데믹 여파로 한동안 주춤했던 오프라인 마라톤대회가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덕분에 지난 일요일 진양호반을 달리는 진주마라톤대회에 참가했다.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국에서 3500여명의 러너들이 참가해 모처럼 ‘마라톤 도시’ 진주의 분위기를 살렸다. 시각장애인마라토너와 페이스메이커들이 펼치는 우정의 레이스는 단연 돋보였다. 20년째 이어지는 훈훈한 드라마는 올해도 펼쳐졌다. 진주에 ‘풀뿌리 마라톤’의 씨앗을 뿌린 경상국립대 전차수 교수도 자리를 함께해 의미를 더했다. 일흔다섯 나이에도 국토종단 달리기를 계속하면서 ‘살기 위해 달린다’는 함양의 울트라마라토너, 풀코스를 100회나 달린 팔순의 부산 마라토너,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고 발군의 기록을 수립하는 장애인 마라토너 등 저마다의 충실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함께 달려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다.

여기까지는 코로나19 이전의 이름 있는 여느 마라톤대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풍경이지만, MZ세대가 달리기 행렬에 가세하면서 진주대회의 분위기는 한껏 고조됐고, 풍성해졌다. 출발 전부터 우렁차게 울려 퍼진 함성은 주로까지 내내 이어지면서 활기를 더했다.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패션과 젊음으로 무장한 청년들의 쾌속질주 본능은 함께 달리는 기성세대에 신선한 동기부여로 작동했다. MZ세대의 달리기는 거침없다. 이름부터 다르다. 마라톤클럽이나 동호회 같은 용어 대신 ‘러닝크루’다. 클럽이나 동호회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지만 러닝크루는 MZ 러너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엔알엔žƒ’이라는 신조어 같은 러닝크루에 눈길이 꽂혔다. ‘NO RUN NO FUN’ 약칭이란다. 꼰대 습성으로 굳이 풀이해 보자면 ‘안 뛰면 재미없어’ 정도랄까. 달리기에 재미를 붙인 청년들이 자랑스럽다. SNS 등 디지털 문화에 익숙한 MZ세대 러너를 위한 러닝 어플이 다양하게 나오면서 소규모 러닝크루가 활성화돼 마라톤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는 모양새다. 멋지게 달리는 영상이나 사진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면서 존재감을 세상을 알린다. 건강을 다지며 신체적·정신적 에너지를 충전하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 ‘먹방’ 후기를 올리는 대신 건강하게 달리는 모습을 SNS에 올리면서 이른바 ‘#런스타그램’이 대세로 자리 잡아 가고 있을 정도다. 덩달아 관련 산업도 호황이란다.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건강도 챙기고 경제도 살리니 일석삼조다.

달리기 열풍은 건강의 바로미터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달리기에 나선다면 국민건강은 저절로 좋아진다. 국민건강지수를 올려주는 거대한 물결에 다름 아니다. 적자에 허덕이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살리는 일이기도 하다. 때마침 불어오는 MZ세대의 달리기 열풍을 허투로 보내서는 안 될 일이다. 지속가능한 건강사회를 위해서는 청춘이 마음껏 달릴 수 있어야 한다. 끊임없는 지원과 노력이 필요하다. 더 나은 미래를 달릴 수 있도록 판을 만들어 주는 것이야 말로 시대적 책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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