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슈룹’이 보여준 공감과 연대의 여성서사
[여성칼럼]‘슈룹’이 보여준 공감과 연대의 여성서사
  • 경남일보
  • 승인 2022.12.14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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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정 (진주YWCA 사무총장)
고명정 (진주YWCA 사무총장)


오랜만에 제대로, 여성서사 맛 집, 드라마를 만났다.

지난 12월 4일 종영한, tvN 퓨전사극 ‘슈룹’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것 같은 찬란한 연대와 서사를 선사했다.

독립영화거나 다큐영화의 소재로만 접하기에는 이미 현실로 광범위하게 우리 곁의 여성주의, 여성연대, 사회적 소수자, 신분사회보다 어쩌면 더 심해진 오늘의 양극화의 단면에 대한 이야기를 조선 구중궁궐 배경의 사극에서 어찌나 보드랍게 잘 녹아내는지 감탄이 절로 났다.

작가의 상상력이 많이 가미된 퓨전사극이라 가능한 설정이라 하더라도 만만치않은 위의 소재들을 다른 콘텐츠보다 대중적인 안방극장에서 무리 없이 다루어 반가운 마음이다. 대놓고 하는 공론화와 토론의 장도 필요하지만 잘 만들어진 드라마를 통해 우리가 함께 품어야 할 가치를 덜 심각하게 전개하면서 자연스럽게 토론거리와 생각거리를 주는 작품은 훌륭하다.

우산의 순 우리말이라는 ‘슈룹’은 극 전체 중심 주제를 이끌어가면서 함의하는 바가 적지 않다. ‘슈룹’이 대군들의 어머니로서 한정된 ‘슈룹’이었다면, 그래서 네 아들이 스스로 겪어내어야 할 성장통을 미연에 방지하고 덜어주기 위한 우산이었다면, 얼마나 빈약한 주제와 뻔한 전개로 이어졌을까?

드라마 슈룹은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고 스스로 깨우치게 하고 정의로운 연대를 이끌어내는 우산이 되어 다양한 취약한 상황의 이들의 손을 잡고 그들의 세찬 비를 함께 막아내는 서사로 가득하다. 계성대군 어머니 슈룹은 성소수자를 품었고, 겁탈 당하고도 모자라 누명을 쓰고 위험에 몰린 여인에게는 쉼터(혜월각)를 설립해 미혼모들의 슈룹이 되었고, 시대를 앞서간 당찬 말괄량이 여인 청하의 진심을 보는 슈룹이 되었다. 중전 화령(김혜수)이 관여하고 연결될 때, 취약한 상황이거나 낙인의 시선에 갇혀있는 시대와 사람들에게 해방의 문이 열렸다. 돌봄과 공감의 장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권력욕과 자식의 성공에만 기인한 잘못된 애정으로 하지 말아야 할 선택과 행보를 이어가던 후궁(고귀인, 태소용)에게도 화령의 진심이 전달돼 결국 연대를 끌어내는 슈룹이었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 했던가!

유연한 사고방식을 갖고있으나 소신에 따라 말을 하고 행동으로 연결되는 삶, 취약한 상황에 놓인 자에 대한 공감이 빚어낸 적절하고 슬기로운 행동의 소유자! 결국 중전의 며느리가 된 청하와 초월은 화령을 참 많이 닮아있다.

중전이자 엄마이자 여성이었던 화령은 김혜수의 탁월한 연기로 다각적인 캐릭터로 살아났지만 이 시대 현재진행형 화령은 얼마든지 많다. 궁궐에서 가장 발이 빠른 중전, 화령은 웬 종일 손발을 종종거리며 머리회전을 빨리해서 멀티플레이어로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여성들의 모습으로 오버랩된다.

슈퍼우먼의 원조 격이라 할 만한 여성농민들, 문화다양성과 인권감수성이 턱없이 부족한 지역에서 주민으로 사느라 애쓰는 이주여성들, 유리천장이 엄연히 존재하는 곳에서 커리어를 지키며 고군분투하는 여성들의 일상과 닮아있다.

화령의 소신과 공감과 연대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일단 진실을 마주하는 힘이 당당함을 견인해낸다. 거듭되는 시행착오 중에도 소신을 실천하며 사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나’는 회복탄력성과 아우라를 가진 사람이 되어 타인의 처지에 대한 공감과 연대의 너른 품으로 이어지는 희망을 보여준다.

“국모는 개뿔~조선의 중전은 극한 직업” 이라며 질주하는 마지막 화령의 모습이 통쾌하다.

여러 어려운 상황을 씩씩하게 맞으며 사는 우리네 각양 일상에 시공을 초월한 응원을 주는 것 같다. 공감과 연대의 꽉 찬 서사들 속에서 ‘슈룹’이 보여준 희망이 새해, 새날에 우리 삶에 깃들기를 바라며 한해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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