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사또 납신다, 다섯 가지 차려라”
[경일춘추]“사또 납신다, 다섯 가지 차려라”
  • 경남일보
  • 승인 2022.12.15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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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이학박사
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이학박사

 

구한말은 격변기였다. 1897년 10월 12일 고종은 환구단(서울 소공동 소재)에서 천지신께 제사를 올렸다. 황제 등극 예식이었다. 왕은 황제가 됐고 국호는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뀌었다.

고종이 황제가 된 것은 한식사에 있어서도 중대한 사건이었다. 원래 조선 왕의 일상 수라상는 12첩이 아닌 7첩이었다. 1795년 정조 임금이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연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조차 단출한 밥상이었다.

대비마마의 환갑잔치에도 왕이 받은 밥상은 모두 7기에 불과하다. 12첩의 등장은 고종이 중국 황제의 밥상인 태뢰 12정(鼎)을 모방한 것으로 여겨진다. 결과는 조선의 침몰이었다. 사치풍조는 궁중뿐 아니었다. 무역으로 떼돈을 번 부유층이 늘어나면서 백성들의 밥상문화도 크게 변했다. 19세기 청나라 사신들이 드나들면서 국경 근처에 담배나 인삼을 사고파는 무역상인들은 기방문화에 불을 붙였다. 기방의 본격적인 출현도 이 즈음이다. 상인들은 양반을 넘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매관매직이 성행해 조선 후기 양반은 총 인구의 70%가 넘었다.

19세기 말에 편찬된 조리서 ‘시의전서’는 궁중 수라보다 더 화려한 진짓상을 차린다. 궁중의 7첩 반상은 밥과 국, 조치와 침채(김치)에 반찬 세 가지였다. 반면 시의전서에서는 밥, 국, 조치와 김치를 모두 빼고 반찬만 첩수로 계산했다. 즉 시의전서의 3첩 반상은 궁중의 7첩이 되는 셈이다.

진주의 상차림은 시의전서나 궁중음식과는 다르다. 진주의 접대상은 원칙적으로 메인 요리 5개 또는 3개를 차렸다. 지방관의 밥상인 5정과 높은 관리를 위한 3정 상차림이다.

접대는 메인 음식 5개가 오르는 소뢰상이다. 유교의 경전인 예기(禮記)에 근거한다. 천년이 넘은 역사다. 그릇은 종지까지 포함해 총 29개가 오른다. 지금도 진주 반가에서는 손님상에 메인 요리 다섯 가지를 차린다. 수령 접대도 다섯 가지 정(鼎)이었다. 진주는 지리적 환경과 부유한 양반 계층이 많아 음식이 발달할 수 있는 요인을 두루 갖추었다. 드문 조건이다.

반드시 생선회가 올라가야 진주 꽃상이다. 진주 수령은 궁중까지의 거리감으로 임금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좋았다. 궁중보다 더 많은 음식을 차렸다. 조선 최고의 밥상을 체험하고 싶은 자, 진주로오시라. 서부 경남을 호령했던 사또의 아름다운 꽃상이 당신을 위해 마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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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희 2022-12-21 18:48:47
매주 잘 보고 있습니다. 지방신문에 이렇게 좋은 내용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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