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대법관이 대법원의 잘못을 지적하다
[경일포럼]대법관이 대법원의 잘못을 지적하다
  • 경남일보
  • 승인 2022.12.20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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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점석(경남작가회의 회원)
전점석(경남작가회의 회의)


올해에 있었던 다사다난한 일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은 판사 스스로가 반성하는 모습이다. 지난 8월 30일 대법원장과 대법관 13명 전원이 참석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긴급조치 국가배상 판결에서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다. 대통령이 한 고도의 정치 행위라는 이유로 국가가 책임질 일이 아니라는 2015년의 대법원 판례를 뒤집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법관 두 분은 긴급조치 9호를 적용해 유죄 판결을 한 법관들의 행위는 별도의 불법행위로서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별개 의견’을 냈다. ‘별개 의견’은 다수 의견과 결론은 같지만 결론에 이르는 논리가 다를 경우에 판결문에 별도로 첨부한다. 책으로 말하자면 부록인 셈이다. ‘의견’이라는 이름으로 권력의 시녀였던 사법부가 스스로 뼈저리게 반성했다. 설령 유신정권이 폭력적인 법을 만들어 시행했다고 하더라도 사법부만은 최후의 보루로서 국민의 기본권을 지켰어야 했다는 취지다.

두 대법관은 먼저 권력분립 원칙에 따라 사법권을 법원에 두고, 법관의 신분을 보장했다면서 사법권을 행사하는 법관은 대통령을 비롯한 다른 국가기관의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하며, 법관에게는 입법권과 행정권을 견제할 헌법상 권한과 의무가 있다고 했다.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이야기이다. 1970년대에도 모든 법관은 이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입법권과 행정권을 견제하는 사람은 없었다. 왜냐하면 붙잡혀가서 초죽음이 되도록 두들겨 맞을 게 뻔하고, 그 정도가 아니라 해도 직장은 잃을 가능성이 있으며 그렇게 되면 가족들 먹고 살기가 힘들어지는 게 두려웠다. 자식들도 출세에 지장이 있을 게 뻔하다. 법원에 상주하는 기관원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도 법복을 벗을 일을 자초하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비단 법관만이 아니었다. 국회의원, 교사, 기자, 공무원, 노동자 모두가 그랬다. 무시무시하게 살벌했기 때문에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물론 대다수 국민이 침묵하는 그런 공포 분위기에서도 민주와 정의를 위해 목숨을 던진 사람도 있었다. 이런 사정이 어쩔 수 없었던 일이긴 하지만 어느 게 올바른 것인지를 짚지 않고, 언제까지나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두 대법관은 “긴급조치에 대한 법원의 사법심사는 당시 긴급조치로 발생한 인권침해를 합법적으로 시정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수단이었다”며 법관이 발부한 영장 없이 체포·구금·압수·수색할 수 있도록 한 긴급조치 9호의 위헌성이 심각한데도 이를 제대로 따지지 않고 유죄 판결을 선고한 법관의 행위는 독립적인 불법행위라고 지적했다. 50년이 지나서야 선배의 불법행위를 지적하는 후배가 나타났다. 그러면서 “영장주의를 전면 배제해 국민의 신체의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한 것이 명백한 불법적 수사절차를 그대로 묵인한 것”이라며 “헌법이 법관에게 부여한 책무인 국민의 기본권 보장 의무에 명백히 반하는 위법한 직무행위에 해당한다”고 했다. 불법체포와 고문이라는 불법행위를 묵인한 것 자체가 위법한 직무행위였다고 명쾌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특히 긴급조치 제9호 위반 사건이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수많은 사건에서 재판의 대상이 되었음에도 계속적·반복적으로 사법심사를 해태했고, 이는 대법원조차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여기에 해당되는 판사가 한두 명이 아니다. 이들은 선배 판사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해서도 따끔하게 한마디 했다. 역시 별개 의견에서 ‘긴급조치가 위헌성이 중대하고 명백해 당연 무효라는 점은 이미 오래 전에 선언’했다면서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 회복이 반세기가 지나도록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히 우리가 자성해야 할 일이다’라고 했다. 사실 이 부분은 법원의 역사(司法史)에서 부끄러운 부분이다. 다행히 다른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먼저 욕한 것이 아니라 법관 스스로가 반성하고 다짐했다는 점에서 정말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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