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관아의 액막이 ‘동지팥죽’
[경일춘추]관아의 액막이 ‘동지팥죽’
  • 경남일보
  • 승인 2022.12.22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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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이학박사)
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이학박사


새벽달이 뜬다. 기생의 눈썹처럼 가늘고 애처로운 하얀 그믐달. 깊은 어둠을 뚫고 귀신이 출몰한다는 동지(冬至)다. ‘동지 팥죽’은 중국에서 유래됐다. 요순시대에 형벌을 담당했던 ‘공공씨’의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 역질 귀신이 됐다. 그가 생전에 팥을 싫어해 동지에 팥죽을 쑤어 귀신을 쫓아냈다. 동지는 음의 극치일인데 양(陽)을 상징하는 붉은 색으로 음의 기운을 막는다는 음양오행의 이치이기도 하다.

동지는 음력 날짜에 따라 달리 불렀다. 11월 1일부터 10일 사이에 들면 애동지다. 중순이면 중동지, 하순에 동지가 들면 노동지다. 애동지에는 아이들에게 좋지 않다며 팥죽을 먹지 않았다. 애동지에 팥죽이 금기시 된 것은 가난한 백성들의 마음의 무게를 덜기 위해 생긴 민간 속설일 것이다.

진주성에는 상전들이 많았다. 팥죽상을 각각 한 상씩 차려 올렸다. 관아에서는 팥죽상을 작은 상이라는 명목으로 백성들에게 세금을 부과했다. 연회상인 교자상은 큰상이었고 팥죽상과 떡국상은 작은 상이었다.

동지에는 소나무 가지에 팥죽을 묻혀 관아의 이곳저곳에 칠했다. 액막이 행사인 동지제사다. 아전은 부임하는 수령에게 관아에 귀신이 산다고 겁을 주기도 했다. 악귀를 피하려면 길을 돌아가라느니, 재임 중 죽은 수령의 혼령이 나타난다느니 하는 말로 신임 수령을 현혹하기도 했다. 수령의 동지제는 관아의 엄중한 행사일 수밖에 없었다. 동지제는 민간에도 있었다. 팥죽을 장독대나 대문 앞에 뿌렸다.

팥은 한번 끓여 윗물을 따라내 독성을 제거하고 푹 삶는다. 새알심은 나이별로 먹는다. 찹쌀경단인 새알심은 팥의 찬 성분을 보하는 기능이다. 우리 전통 음식은 매우 과학적이다. 팥죽의 간은 소금이다. 설탕은 팥에 함유된 사포닌 성분을 파괴할 수 있으므로 가급적 넣지 않는 것이 좋다. 일제 강점기, 일본에서 설탕이 들어오자 부산 등 항구도시를 중심으로 단팥죽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설탕범벅인 단팥죽이다. 중국의 동지식은 찹쌀떡에 팥소를 넣어 삶은 ‘탕위엔’이다.

팥죽에는 과일 동치미를 곁들여 소화를 돕는다. 동치미에 삭힌 고추와 사과, 배로 향긋함을 낸다. 비트를 넣으면 빛깔이 곱다. 과일을 이용한 깍두기도 팥죽과 어울리는 음식이다. 마지막 어둠을 물리치는 날 동지. 잘 끓인 팥죽으로 액을 물리치고, 모두에게 행운이 깃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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