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한 장 남은 달력 앞에서
[경일춘추]한 장 남은 달력 앞에서
  • 경남일보
  • 승인 2022.12.25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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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재 (전 서진초등학교장·청렴 및 학부모교육 강사)
박상재 전 서진초등학교장·청렴 및 학부모교육 강사


구겨진 한 장 남은 세월이 애처롭게 목매단 낙엽처럼 나를 바라본다. “니는 금년 한 해 뭐하며 보냈노?” 일그러진 몸으로 나를 보며 질책하는 것 같다. 퇴직했으니 이제 편안히 좀 쉬자는 관대한 자기 위로로 벌써 4년이 후딱 지나갔다.

시간은 강물과 같아서 막을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 그러나 이 물을 어떻게 흘려보내느냐에 따라 시간의 질량도 달라질 수가 있다.

루시 세네카는 말한다. “인간은 항상 시간이 모자란다고 불평 하면서도, 마치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라고. 이제 ‘종심소욕 불유구’를 앞두고 시간의 빠름을 느끼며 두렵기까지 하다.

우리는 흔히 새해에는 ‘작심삼일’이란 말을 많이 쓴다. 이는 마음을 붙잡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한비자 공명편에는 “오른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리고 왼손으로 사각형을 그리면 둘 다 이루지 못한다”하고 ‘대학’ 에서는 “마음이 머물러 있지 않으면 봐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했다. 정신을 집중해 마음을 옮기지 않는 주일무적의 길을 가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한 해를 이별하려니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지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라’ 는 서정주가 떠오른다. 가을 따라 미처 떠나지 못한 게으른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내려앉는다. 많은 사람이 죽을 때 후회하는 것은 ‘베풀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참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좀 더 행복하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라고 한다.

남은 시간 동안 후회 없는 삶을 위해 많이 베풀고 사랑하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이제 이익과 명성은 후배들에게 밀어주고 살자.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 의미가 있다.

덧없이 흘러간 시간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감사하며 이루지 못함에 분노하지 말고 지금까지 이룸에 감사하자. 분노와 원망으로 황폐화되고 파편화된 한국인의 집단 기억에 결여돼 있는 ‘고마움의 기억’을 찾아가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해보며 부동심의 굳은 마음으로 사로(思路)의 길을 가자. 마음이 흔들리면 자신감도 없어지고 주체적인 삶을 살 수가 없다.

책 속의 길은 작가의 길이지 내 길이 아니다. 내 길을 찾는데 도움을 줄 뿐이다. 마지막까지 내 자신을 신뢰하고 사랑하며 살다 가자. 빳빳한 새 달력을 벽에 걸며 내년에는 좀 더 사랑하며 살아야지~ 얼마 가지 못할 다짐을 해보며 세월을 쓰다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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