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한강의 기적, 다시 한번
[경일시론]한강의 기적, 다시 한번
  • 경남일보
  • 승인 2022.12.26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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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 (객원논설위원·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김진석객원논설위원·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한국의 경제발전은 서구 선진국들에 의해 ‘한강의 기적’이라 불려졌다. 1993년 세계은행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적 성공을 분석한 ‘동아시아의 기적’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타이완, 홍콩, 싱가포르 등과 함께 분석한 국가 중에 한국은 단연 돋보였다. 다른 소국들과는 달리 인구와 국토가 상당한 규모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3년간의 전쟁으로 거의 폐허가 되었다가 불과 한 세대만에 신흥 중진국으로 우뚝선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고도 성장만으로도 경이로웠지만 정작 서구학자들을 사로잡았던 것은 사람을 중심으로 인적 자원을 활용한 성장이었다. 한국은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높은 교육열을 바탕으로 사람을 중심으로한 성장정책을 펼쳤다. 이는 당장의 가난을 덮기 위해 돈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성장의 과실을 거둘 역량을 갖도록 사람을 키우는데 주력했다는 것이다. 국가예산의 절반 이상을 미국의 원조로 메우던 가난뱅이 나라였으면서도 1960년대 사회지출은 복지나 의료지원이 아닌 교육지출에 막대한 비중이 투입됐다. 마을마다 초등학교를 짓고 우수 인력을 교사로 양성하는데 아낌이 없었다. 전쟁중이었던 1953년 실시된 전 국민 무상 초등교육에 힘입어 광복후 80%에 육박했던 문맹률이 급감한 후에도 교육투자에는 거침이 없었다.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직업교육 체제를 마련하고, 중고등학교 접근성을 단계적으로 높여 산업화가 요구하는 인력을 공급했다. 결국 인적 자원 고도화를 통해 국민 대다수를 경제성장에 포용함으로써 성장과 분배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한국의 사람 중심 성장은 2차 세계대전 후 자본주의 최대 호황기에 국가 주도적 복지국가를 건설했다가 신자유주의로 선회하면서 누적된 이중의 부작용으로 골머리를 앓던 서구 선진국에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당시는 연금과 복지 확대, 노동 시간 감소를 통해 넉넉하고 여유로운 생활을 국가가 보장하는 것이 인류문명의 발전이며 진보라는 오랜 믿음이 세계화와 재정위기 속에서 뿌리부터 흔들리는 시기였다. 영국의 사회학자 기든스 교수는 우리의 사람 중심 성장에서 ‘개인과 가족이 자조(自助)할 수 있도록 정부가 돕는다’는 정신을 읽어냈고, ‘제3의 길’이란 비전을 만들어 냈다. 개인과 가족·국가·각각의 책임을 강조하는 ‘제3의 길’은 영국 노동당과 독일 사회당의 공식 노선으로 자리매김했고 2000년대 초반 하르츠 개혁을 비롯한 많은 선진국 복지 개혁의 기반이 되었다.

우리에게 배워간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가 국민을 돌보되, 시장의 흐름을 막지 않으면서 개인이 그 흐름을 탈 수 있도록 일으켜 세우고 준비시키는 방식이다. 또한 재분배의 개념 역시 달랐다. 단순한 소득 이전이 아니라 각자의 잠재력을 개발하고, 부유층 자녀가 더 성공하게 되는 구조를 개혁해 소득 창출능력 자체를 재분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1998년 영국 블레어 총리와 독일 슈뢰더 총리는 ‘유럽에 놓인 제3의 길’을 통해 정책목표가 불분명한 소득 지원으로 국가의 책임을 과장하고 재정지출의 크기로 진보 정당임을 증명하려 했던 사회민주주의 관행을 통렬하게 자아비판했다.

그러나 ‘한강의 기적’으로 칭송받던 그 시대 이후의 우리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세계화와 기술 변화 속에서 산업간 생산성 격차, 저출산 고령화, 노사 갈등, 재정 압박 등이 지금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도전이다. 가장 암울한 것은 좌우 진영 갈등에 의한 국론분열과 국가비전의 부재로 인한 사회 혼돈이다. 칼날 같은 글로벌 경쟁 속에서 우리가 놓인 현실을 직시하고, 번영과 사회 통합을 모색하기 위한 비전이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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