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남계서원의 가치
[경일춘추]남계서원의 가치
  • 경남일보
  • 승인 2022.12.27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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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구 (남계서원 원장)
이창구 남계서원 원장


남계서원은 1552년에 건립된 한국의 두 번째 서원이다. 전면에 들판이 조성된 탁 트인 경사지에 입지하고 있다. 남계서원은 경사지의 지형조건을 활용해 제향 강학 교류와 유식이라는 서원의 배치 정형을 최초로 제시해 한국서원의 독창적 건축배치 형식의 근간을 마련했고 이것이 이후 건립되는 많은 서원들의 기준이 됐다. 남계서원은 다른 서원에 비해 건축공간의 규모가 작다. 그러나 서원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완벽하게 갖췄을뿐만 아니라 각 건축물의 배치형식까지 시원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은 남계서원이 가지고 있는 건축적 가치라고 할 수 있다.

남계서원은 순수한 민간인인 사림이 서원건립과 운영을 주도했고 이러한 원칙은 이후 건립되는 서원들의 전형이 됐다. 자발적인 서원의 재정운영 사례로 창건부터 19세기까지 사림의 기부 내역과 관련된 장부인 ‘부보록’이 남아있다.

남계서원의 주향 인물 정여창 선생은 함양출신 사림으로 16세기 전반 중앙정계에 관료로 진출한 인물이다. 그는 중앙 관료들의 관료주의적이고 훈구 중심적인 성향에 대해 성리학에 기반한 입장을 견지하며 정치활동을 했다. 그의 정치활동은 이후 사림의 정치 참여에 하나의 유형이 됐다. 이후 남계서원은 강익(1523~1567)과 정온(1569~1647)을 종향했다.

남계서원의 사림은 성리학적 세계관을 현실에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예로 마을 사람들의 혼례나 장례를 재정적으로 지원해 지역 사회의 교화에 힘썼으며 봄과 가을에 행해지는 정기적인 제향 의식을 통해 지역사회의 격식을 갖추고자 했다. 또한 16세기 후반 일본의 침략에 대해 경남도의 의병활동을 주도했다. 남계서원은 1597년 왜군에 의해 전소 됐으나 전쟁이 종료된 후 1603년 곧바로 함양지역 사림에 의해 재건됐다. 이후 남계 서원은 경남도의 서원들과 사림중심 거점으로 발전했다. 남계서원은 19세기까지 훼철되지 않은 경남도 유일의 서원이다.

오늘날 우리가 이러한 서원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그것을 우리 후손들에게 어떻게 물려줄 것인지를 생각하면 성리학이란 학문적 가치와 선비정신을 가르치려 했던 교육적 측면을 제일 강조하고 싶은 것이 현실이다. 물질만능의 사회풍조에서 사라진 정신적, 도덕적 해이가 대한민국 사회의 어두운 현실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벗어날 길은 옛 성현들이 가고자 했던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생동하고 예의염치(禮義廉恥)가 살아있는 그런 사회를 서원의 정신과 가치에서 찾아봤으면 하는 바람으로 남계서원의 소개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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