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섣달그믐의 양로식 ‘전약’과 ‘대구연포탕’
[경일춘추]섣달그믐의 양로식 ‘전약’과 ‘대구연포탕’
  • 경남일보
  • 승인 2022.12.29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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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이학박사)
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이학박사


봄에는 고아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고, 가을에는 노인을 먹인다. 예기(禮記)의 규례이다. 추위가 닥치면 노인들이 병사하는 일이 많았다. 수령은 섣달 그믐 이틀 전, 노인들에게 음식을 보냈다. 사대부가의 80세 이상인 자들이었다.

1890년 조선인의 평균수명은 35세였다. 좋은 것만 골라 먹은 임금도 고작 평균 46세를 살았다. 장수는 하늘이 내린 축복이었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80세 이상 된 남자에게는 각각 쌀 한 말과 고기 두 근씩 예단(禮單)을 갖춰 보내 인사할 것을 권한다. 90세 이상 된 노인에게는 진귀한 찬 두 접시를 더하라는 말도 덧붙인다. 유과 약과 건치(꿩포 乾雉)라고 등속까지 명시했다. 19세기 조선에서 가장 비싼 간식이 유과 약과 건치였던 모양이다. 아무리 큰 고을이라도 80세∼90세 이상 된 노인은 십수명을 헤아렸다. 쌀 두어 섬, 고기 60근이면 족했다.

다산은 “노인에게 보내는 예단을 아껴서야 되겠냐”고 반문한다. 동지에는 특별히 노인을 위한 음식을 장만한다. 성질이 따뜻한 대구연포탕이다. 포획량이 줄어들면서 대구가 비싼 생선이 돼버렸지만 조선시대 진주에서 대구는 한 마리에 8푼으로 매우 저렴했다. 마른 민어 1마리가 대구 100마리 값이었다. 대구연포탕은 맑은 지리로 끓인다. 대구뼈를 푹 고아 생선살과 두부로 완자를 빚어 노인들이 먹기 좋게 만들기도 한다.

노인들이 가장 우려한 것은 풍, 즉 뇌졸중이다. 대구는 성질이 평하고 독성이 없다. 오메가3가 풍부해 혈압과 뇌졸중 등 심혈관 질환에 대비하는 약선음식이다.

양반가에서는 전약(煎藥)을 올렸다. 전약은 동짓날 궁중 내의원에서 임금께 올리던 보양식이었다. 임금은 전약을 신하들에게 하사했다. 민가에도 퍼졌다. 전약은 우족이나 우피와 내장을 끓여 식힌 아교를 이용해 양갱처럼 만든다. 정향, 후추, 대추, 꿀을 더하고 계피를 넉넉히 넣는다. 중국 사신에서부터 왜인들까지 이를 찾았다. 음식이면서도 약이었다.

해산물이 흔했던 진주에는 아교 외에도 생선뼈와 내장으로 만든 ‘어교’가 있었다. 아교에 비해 3분의 1가격이었다. 어교가 발달한 것은 고려의 문화를 잇는 것이다. 전약은 고려시대 팔관회의 진찬이었다. 아들이 아버지를,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섬겨온 양로의 전통. 그 사이 진주의 시간도 천년이 흘렀다. 2023년 기쁜 새해를 준비하며 임인년의 마지막 달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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