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예술인을 만나다] 송광일 극단 현장 배우
[청년 예술인을 만나다] 송광일 극단 현장 배우
  • 백지영
  • 승인 2023.01.01 1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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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보다 중요한 건 좋은 작품과 작업 환경”
중학생 때 우연히 본 연극에 매료
진주 극단 현장서 연기생활 10년
지난해 경남예총 ‘미래예술인상’
“새해엔 ‘내 작품’ 연출에 집중”

 
 


“청년 예술인 지원 예산이 있으면 뭐 합니까. 청년들은 전부 서울로 가버렸는데…”

도내 문화예술 행정계에서 근무하는 이에게 언젠가 들은 하소연입니다. 경남에서 의욕에 찬 활동을 펼치는 예술인도 있기야 하지만, 이들 몇몇을 지원하고 나면 더는 마땅한 지원 대상을 찾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지역에서 예술을 업으로 삼고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청춘들을 보면 괜히 반가운 마음부터 드는 이유입니다.

경남일보는 신년을 맞아 지역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청년 예술인을 릴레이로 조명하는 기사를 연재합니다. 더 많은 청춘을 만나기 위해 느슨한(?) 나이 기준을 적용해 경남에서 예술로 밥 먹고 사는 젊은 청춘들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사진=송광일 배우


‘라이어’.

올해로 연극과 사랑에 빠진 지 20년을 훌쩍 넘은 30대 배우는 자신이 처음 관람했던 연극 작품을 똑똑히 기억했다.

중학생 시절 다니던 보습학원의 국어 강사가 마침 연극 팬이었다. ‘오늘은 학원 수업을 뒤로하고 단체로 연극을 보러 가자’는 강사의 말에 별생각 없이 따라나섰던 소극장은 10대 소년의 인생을 바꿔놓은 장소가 됐다.

이게 뭔가 싶었다. 조그마한 극장에 앉아 눈앞에서 펼쳐지는 생생한 연기를 보고 있는데 괜히 긴장돼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때부터 매주 홀로 경기 성남의 집에서 소극장이 밀집한 서울 대학로까지 왕복 2시간 남짓 거리를 이동해 연극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연극 무대에서 공연하는 배우가 돼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무렵. 무대를 바라만 보다, 나도 저 무대 위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낯선 사람들 앞에선 귀가 빨개질 정도로 내성적인 성격도 연극 무대에 오르면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부터 쉬지 않고 연기의 길을 걸어왔다.

지난달 16일 ㈔한국예총 경남연합회가 개최한 한 해 결산 행사 ‘경남 예술인의 밤’에서 ‘미래예술인상’을 수상한 송광일(36) 배우의 이야기다. ‘극단 현장’에서 연극 배우로 활동한 지 10년 차가 된 그는 앳된 소년에서 경남 연극판에서 눈여겨보게 되는 배우로 자리잡았다.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한 송 배우는 졸업한 해 극단 현장이 전국 배우들을 공개 모집해 무대에 올렸던 뮤지컬 ‘유등’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진주에 정착했다. 지역 출신도 서울에서 활동하기 위해 상경하는 요즘, 그는 오히려 가능성을 찾아 경남에 정착한 사례다.

“졸업 후에는 서울 등지에서 연극 무대에 서던 시기였는데, 당시 작품을 보러온 은사님이 ‘유등’ 출연을 권하셨어요. 경험을 쌓아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왔는데, 극단 시스템이나 작업 환경이 너무 마음에 들어 지금까지 눌러앉게 됐습니다”

많은 배우가 출연하고 제작진도 많이 필요한 작품이었는데 6명 정도의 인원으로도 공연을 착착 굴려 가는 게 무척 인상 깊었다. 여기서 배우면 연극을 재밌게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몸담은 ‘극단 현장’에서 착실히 연기를 배우며, 지금은 극단의 대표적인 순회공연 작품인 ‘정크 클라운’과 ‘카툰 마임쇼’ 등 비언어 공연을 비롯해 굵직한 무대를 장식하는 ‘허리’ 격 배우가 됐다.

배우뿐만 아니라 지난 2014년 안톤 체호프의 단막극 ‘청혼’과 ‘곰’을 제작한 것을 시작으로 연출가로서도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연극 자체에 매료된 만큼 좋은 메시지가 담긴 작품을 무대에 올려보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다.

특히 배우들의 매력적인 면모를 잘 보여줄 수 있는 2인극을 좋아해 꾸준히 제작에 나서고 있다. 올해도 오랜만에 들어온 신입 단원 2명을 데리고 연극 ‘달빛유희’를 무대에 올렸다.

지난 2022년은 송 배우에게 유독 바쁜 한 해였다. 시민극단 ‘국민배우’와 ‘청소년 극단’ 두 곳에서 강사를 맡아 한 해 동안 열심히 교육을 이끌어 왔고, 순회공연 등의 일정도 빼곡해 바쁘게 움직였다. 여기에 ‘극단 현장’의 ‘2022 대한민국연극제’ 본선 진출로 숨 가쁘게 바쁜 일정이 이어지면서 ‘번 아웃’이 올 뻔한 고비도 넘겨야 했다.

송 배우는 새해에는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연극에 좀 더 집중할 생각이다. “2인극 등 연출하고 싶은 좋은 작품을 찾아내고 진득하게 고민하고 무대에 올리는 게 행복한 작업인데 공들여 고민할 시간이 부족했던 것 같다”며 “새해에는 좀 더 연출에 집중해 보고 싶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시간이 제대로 나지 않아 제대로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희곡 집필에도 도전할 생각이다.

그가 속한 ‘극단 현장’은 지난해 오랜만에 정규 신입 단원이 들어왔다. 연극에 관심이 있거나 잘하는 청년들은 진학부터 작품 활동까지 모두 서울에 가서 하려고 하는 게 요즘 현실인데, 모처럼 지역에서 수혈된 젊은 피가 반갑고 기특해 보인다.

송 배우는 “제가 해보니까 지역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작품과 작업 환경이 더 중요하더라고요. 그 여건만 잘 주어지면 서울이든 지방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더 많은 배우가 몸담고 싶은 텃밭을 열심히 일구기 위해 저도 열심히 달려보겠다”는 힘찬 새해 포부를 밝혔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사진=송광일 배우
 
사진=송광일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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