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천년고도 진주의 전통적 자랑거리
[경일춘추]천년고도 진주의 전통적 자랑거리
  • 경남일보
  • 승인 2023.01.03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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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웅 경상국립대 명예교수
강신웅 경상국립대 명예교수


지금부터 1359년 전인 서기 663년(통일신라 신문왕 3년)에 신라가 거열성을 백제로부터 통합하게 된다. 그리고 2년 후엔, 그 명칭이 거열주(居烈州)로 바뀌면서 명실공 신라라는 거대한 통일국가 소속으로 국가로부터 행정적 지원과 통제를 받으면서 균형 잡힌 지역도시, 즉 청주(菁州, 지금의 진주)라는 완성된 읍성체제를 갖췄다.

그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무려 1360여년 사이에, 진주는 긴 역사와 피할 수 없는 지정학적 운명으로 전국의 다른 도시들에 비해 숱한 시련과 고충을 겪으면서도, 진주는 지역의 어떤 다른 도시에서도 결코 찾아 볼 수 없는 매우 독특한 역사적 문화적 특성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진주의 자랑거리는 ‘충절인이 많다’는 것과 ‘교육의 도시’를 꼽을 수 있다. 먼저 진주에는 정몽주를 비롯한 이익, 정문부 옛 성현들이 “진주는 지령인걸지(地靈人傑地)로 걸출한 인물들이 속출하는 천부(天賦)의 명지”라고 칭송해 왔다.

고려 때 하공진(河拱辰), 강민첨(姜民瞻), 이빈(李賓), 조선조 때 하경복(河敬復), 정분, 하위지(河緯地), 김시민(金時敏), 논개(論介), 그리고 수많은 진주동학농민군(1894년), 뿐만 아니라 1919년 3·1운동 때의 산홍, 한금화 등 충절기생들까지도 있었다. 여기에 세계 전사 상 그 어디에도 전례를 찾을 수 없는, 계사년(1593)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참혹하게 순절한 7만여 무명의 민관군들도, 이곳 천년도시 진주의 진정한 충절인임을 빼놓을 수 없다.

‘교육의 도시’라는 자랑거리의 배경은 고대로부터 자연적인 생존교육을 행해 온 우리민족은 삼국시대를 거치면서 체계적인 교육기관에 의한 교육이 시작됐다. 특히 이곳 진주는 799년(효성왕 원년)에 청주(菁州)에 노거현을 국학학생의 녹읍으로 정했고 고려시대에는 향교가 있어 은열공 강민첨 장군이 수학했던 기록으로 보아 학문을 숭상했다. 조선시대에는 사림들의 권학을 위한 최초의 모임인 금란계가 조직됐고, 영남학파의 중심지로 해동의 추로지향(鄒魯之鄕, 유가의 예절과 학문을 특별히 숭상했던 지역)으로 명성을 높였다. 또한 1895년 당시 도청 소재지였던 진주에 지방에서는 최초로 ‘진주소학교’라는 근대식학교가 들어섰고 이어 일제 강점기에는 다양한 공·사립학교들이 설립됐다. 특히 민족사학재단인 일신재단의 설립은 진주인들의 여성교육에 대한 열정과 노력을 잘 나타내고 있는 자랑스러운 일로 전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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