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국보105호 산청 범학리 3층 석탑 고향땅으로
[경일칼럼]국보105호 산청 범학리 3층 석탑 고향땅으로
  • 경남일보
  • 승인 2023.01.03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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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영 수필가·전 명신고 교장
안명영(수필가·전 명신고 교장)

 

산청박물관 출입구에 ‘산청군 청년 우리 동네 이야기’ 책자를 게시했다. 동네는 사람들이 모여 생활하는 곳이다. 바위나 지형 등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속에는 지혜도 담겨있다. 청년들이 동네 이야기를 듣고 기록한다는 것은 향토 문화를 이어가는 모범 사례이다. 2층 전시실에 ‘산청의 추억’을 제목으로 오래 된 사진이 진열돼 있다.

제1회 졸업기념(4286. 3.21)이다. 학생은 4줄(33명)로 꼿꼿하게 서있다. 교원은 앞줄에 양복 입은 6명, 한복 차림 1명, 치마저고리 1명, 잠바차림 남자는 뒷줄에 끼었다. 학생은 모자 쓰고 교복을 입었고 굳은 얼굴에 선생님은 근엄하다. 기와지붕 위 커다란 간판에 ‘원기소’라 쓰고 병을 그렸다. 경남산청공립보통학교는 계단과 난간에 정장의 신사와 학생이 서고 한복 입은 노인이 끼었다. 건물 구조로 향교로 추정된다.

또 상륜부 없는 삼층석탑 사진이 있다. 마을 길 아래 있는 탑은 길과 하층기단은 높이가 같아 걸음을 쉽게 옮길 수 있겠다. 넥타이를 맨 신사가 하층기단에 발을 딛고 오른손 팔꿈치는 상층기단에 걸치고 왼손에 단장을 짚고 서있다. 탑신은 갈수록 짧아지고 삼층에서 끝이다. 상층기단에 신장상과 1층 탑신에 보살상을 볼 수 있다.

기단석 탑신 등이 널려있는 사진도 있다. 허름한 창고 앞에 모자를 쓴 신사는 오른손에 단장을 짚고 왼손을 뒤로 돌렸고 가마니 위에 널려 있는 노획물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하다. 기단석에는 신장상이 조각됐다. 탑신의 보살상은 오른손에 공양을 들고 팔꿈치는 오른쪽 무릎에 얹었다. 왼발을 꿇고 왼손은 가슴에 모으고 후광이 있다. 왼쪽 아래 모서리는 떨어져 나갔다.

진주성 안에 있는 국립진주박물관 잔디밭에 삼층석탑을 볼 수 있다. 사각 기단 위에 긴 기단을 얹고 탑을 올렸는데 상륜부를 볼 수 없다.

산청박물관 ‘산청의 추억’에서 보았던 넥타이 매고 단장 짚은 신사가 찍힌 사진의 석탑과 일치한다. 기단석에서 보았던 신장상은 남쪽 면에서 볼 수 있다. 탑신의 공양을 받치던 보살상은 서쪽 면에서 확인되며 왼쪽 아래 모서리가 떨어져 나갔다.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국보 105호).

2층 기단에 삼층 탑신을 올린 석탑이다. 꼭대기 장식과 하층기단 덮개는 없어졌다. 석탑 재질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섬장암으로 만들어졌고 덮개돌 이하 부분에도 동일한 섬장암을 사용했다. 석탑 외면에는 정교한 부조상으로 새겨져 있다. 상층기단에 8구의 갑옷을 입은 신장상이 무기를 들고 있다. 1층 탑신에 공양하는 보살상 4구가 조각됐다. 신장상과 보살상 조합은 독특한 사례로 9세기 통일신라 석탑 양식의 중요한 지표로 되며, 뛰어난 조각기술과 불교미술의 높은 수준을 보여 준다.

사진에서 보았던 단장(短杖)의 신사는 일본 골동품 상인이며 해체된 것은 섬장암으로 만들어진 국내 유일의 국보 105호 범학리 삼층석탑이다.

삼층석탑은 경호강이 바라보이는 둔철산 자락에 서 있었다. 1941년 대구 골동품상이었던 오쿠 지스케에게 쌀 5가마니에 불과한 헐값에 팔렸다. 조각난 채 진주로 옮겨져 열차로 대구로 운송되고 공장 터에 숨겨졌다. 이듬해 조선총독부가 불법 반출 사실을 인지하고 회수해 총독부 박물관으로 이송한다. 1946년 경복궁 안에 세웠고 1994년 경복궁 정비사업으로 해체돼 23년 동안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서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렸다. 국립진주박물관은 지역을 대표하는 석조문화재가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관을 요청했. 탑이 고향 인근으로 돌아오는데 자그마치 77년이 걸렸다.

원래 자리로 옮겨 둔철산을 돌아온 국보까지 안아주는 명산으로서 문화재 애호가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정교한 모조품을 생초국제조각공원 전망 좋은 위치에 세우자. 우리의 조각품이 세계적으로 우수하다는 것을 만방에 알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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