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고문헌 [4]‘문상풍요’와 학이재
경남의 고문헌 [4]‘문상풍요’와 학이재
  • 경남일보
  • 승인 2023.01.04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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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곡마을 사람들의 풍속을 읊은 시 ‘문상풍요’
‘문상풍요’창작 공간 ‘학이재’
학문에 대한 포부·즐거움 등
다양한 시가 다채롭게 등장해




◇문상풍요(汶上風謠)

‘문상’은 제나라 남쪽과 노나라 북쪽 사이를 흐르는 문수(汶水)의 상류를 말한다.

노나라 권신 계강자가 덕행이 뛰어난 공자 제자 민자건을 노나라 수령으로 삼으려 하자, ‘나는 노나라를 떠나 제나라 문상에 가 있을 것이다’라며 벼슬을 사양한 데서 문상이 유래한다. 혜산 이상규(1847∼1923)도 조정에서 의금부도사로 불렀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남사마을에서 흘러와 경호강과 합쳐지는 강을 문천(汶川)라고 이름하고, 문천 강변 상류 묵곡마을을 문상이라 부르며, 이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풍요’는 풍속을 소재로 노래한 시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 책은 ‘묵곡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묵곡의 풍속을 읊은 시집’이라는 뜻이다. 산청 단성의 사월, 묵곡, 소남에 사는 이도묵, 이상규, 조호래 등의 지도로 묵곡에 사는 인물 33인이 참여해 416편의 시를 엮어 1910년에 간행한 창작시집이다.



 
문상풍요


◇입수 과정

산청 단성 묵곡(묵실)에 있는 혜산 후손가를 찾아간 것은 2013년이다.

겁외사 뒤 한천정을 찾아가니 대진고속도로 아치 교각이 대문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한천정은 혜산이 지은 문중 재실이다. 잘 가꾸어진 한천정에는 이상석씨 부부가 살고 있었다. 마루에 오르니 ‘조순자 여사 효부패’가 보였다. 노부부는 오랫동안 서울에서 큰 포목점을 운영하다가 부군이 몹쓸 병에 걸리자 하루아침에 사업을 모두 접고 고향으로 내려와 조순자 여사가 온갖 조약으로 병간호해 남편을 살린 것이다. 혜산 선생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고문헌 전체를 대학에 싣고 가서 연구해 달라고 했다. 기증받은 고문헌을 정리하다가 ‘문상풍요’라는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천정 전경


◇학이재(學而齋)

‘문상풍요’의 시 창작 공간은 ‘학이재’였다.

학이재는 혜산이 문중 자제 교육을 위해 1904년에 건립한 서당이다. 학이재는 묵곡생태숲이 끝나는 경호강 언저리 대숲 속에 꼭꼭 숨어 있었다.

학이재를 방문하니 우람한 소나무 세 그루가 사이좋게 학이재를 지키고 있었다. 학이재 대문 밖에는 ‘영귀교’와 ‘풍영대’라 쓰인 바위가 소나무 아래에 우뚝 서 있었다. 공자의 제자 증점이 ‘봄옷이 만들어지면 어른 대여섯 명과 아이 예닐곱 명을 데리고 기수에 가서 목욕하고 무우 아래에서 바람을 쐬면서, 시를 읊조리다가 돌아오고 싶다’고 말한 ‘논어’에서 따온 말이다.

혜산도 학이재에서 학동들을 가르치다가 증점처럼 문천에 가서 목욕하고 영귀교와 풍영대에 올라 벗들과 시를 읊조리겠다는 뜻이다. 서당을 들어서니 마루에는 학이재(學而齋, 배우고 익히는 집), 천상헌(川上軒, 문천 강가의 집), 취지헌(聚之軒, 지식을 모으는 집) 현판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방으로 들어가는 처마 밑에는 ‘완락오(玩樂奧, 책을 사랑하여 즐기는 방), 양정실(養正室, 어린 학동을 올바르게 기르는 방)’ 현판이 걸려 있다. 벽에는 허유, 정면석, 장석신의 시가 걸려 있다. 학이재는 서부 경남 유학자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중요한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서당을 처음으로 방문하였을 때는 매우 퇴락했으나, 근래 다시 방문하니 깔끔하게 정비가 되어 있었다. 이상석 씨 따님인 이현숙 씨 가족이 서울에서 이곳으로 들어와 라벤더 농사를 지으면서 학이재를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님을 뵈려고 방문했으나, 부모님을 모시고 바람을 쐬러 나가고 없었다.

 
학이재 가는 길. 지금은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다.
학이재 전경
학이재 현판
◇문상풍요의 내용

문상풍요에는 문상팔경, 엄혜산, 망해봉, 동강(桐江), 적벽, 탁청대, 환구정, 학이재, 송객정을 읊은 시, 묵곡에서는 농사짓는 모습, 학문에 대한 포부와 즐거움을 읊은 시가 다채롭게 등장한다.

묵곡에는 문상팔경이 있다. 곧 엄혜산에서 불어오는 맑은 바람, 동강에 내리는 저녁 비, 망해봉의 낙조, 문천에서 고기 잡는 어부의 불빛, 송객정으로 돌아가는 돛단배, 고래들의 저녁연기, 자라봉의 아침노을, 신선대에 뜬 밝은 달을 가리킨다. 이 중 고래들의 저녁연기를 읊은 이진훈의 시를 소개한다.



천막을 친 듯 바구니를 덮은 듯, 또 그림을 그린 듯,

들판 가득 자줏빛 비췻빛 까마득히 하늘에 닿아있네.

숲속 바람이 불어 쓸어갔다고 말하지 마소,

집마다 따뜻하게 하고자 군불 때는 연기 피어오른다오.



묵곡마을 가운데 넓은 들판을 ‘고래들’이라 부른다. 이곳은 뽕나무·대나무와 각종 곡식을 재배하는 들판이다. 자줏빛과 비췻빛이 아득히 지평선을 이루어 하늘에 맞닿았음을 읊어 고래들이 얼마나 넓은 들판인지를 표현했고, 집마다 군불 때고 밥을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평화로운 묵곡의 모습을 읊고 있다.

묵곡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온다. 묵곡 뒷산에는 엄혜산과 자라봉이 있다. 자라봉 봉우리에는 자라처럼 생긴 큰 바위가 남쪽으로 명석면 오미 마을을 바라보고 앉아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이 자라가 남쪽으로 오목오목 먹고 뒤쪽으로 묵실묵실 내놓아서 오미 마을은 가난하고 묵실 마을은 부유하다고 하였다. 오미 마을 사람들이 어느 날 밤에 몰려와서 자라목을 떼었다가, 그 뒤에 다시 붙여 놓았다고 전한다.(박종섭, 산청구비문학 2)

자라봉은 산청 묵곡과 진주 명석의 경계인 검무봉을 가리킨다. 묵곡은 마을 뒤로 엄혜산과 검무봉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마을 앞으로는 강이 고요히 흘러가는 풍요로운 들판을 품은 마을이다. 예로부터 비옥하고 부유한 마을로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집에는 농사일의 어려움을 읊은 시가 많다. 농사일을 읊은 「전가사(田家詞)」 15수, 누에 치는 아낙네의 괴로움을 읊은 잠부사(蠶婦詞)8수가 수록되어 있다. 다음은 이상호가 읊은 묵곡마을 누에 치는 아낙네 노래 중 일부다.



뽕잎을 딴다네, 뽕잎을 딴다네,

배불리 먹여야지, 굶길 수는 없다네.

광주리 끌고 뽕 따러 가니,

이른 새벽 들판에 사람이 드물도다.

세 잠만 자고 일어나면,

누에가 살 오른 것을 볼 수 있으리라.

(중략)

짠 옷을 관아에 바쳤으니,

관리의 꾸짖는 소리 면하게 되었네.

관리가 이 괴로움을 어찌 알랴,

한 달에 3필 밖에 못 짜는 것을.

우리 귀한 관리 자녀의 치마,

나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다네.

 
묵곡마을 고래들의 고구마밭


넓은 들판에서 생산된 뽕잎을 따서 누에를 치고, 비단을 짜서 관아에 바치는 수고로움을 읊고 있다. 지금은 비단의 수요가 줄어들어 묵곡에서 뽕나무를 찾기가 어렵다. 대신에 들판에는 고구마와 시래기 무를 생산해 팔고 있다.



다음은 송의노와 이희노가 읊은 묵곡의 전원생활이다.



오월의 밭에서 일하는 늙은이 잠시도 쉴 틈이 없어,

모심고 보리 베고, 비 맞으며 집으로 돌아온다네.

도롱이 채 벗지 못한 채 드러누워 쉬는데,

청산에는 석양에 물든 송아지가 올라온다네.



엄혜산 아래에 집을 마련하니,

강물 소리 밤낮으로 들린다네.

누에 치는 집 있어 옷 지어 입을 수 있고,

소가 있어 들판을 경작할 수도 있다네.



묵곡은 넓은 들판이 펼쳐진 만큼 누에치기, 모심기와 보리 베고 타작하느라 일 년 동안 잠시도 쉴 틈이 없다. 몸이 힘들어도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하였다.



◇문상풍요의 가치

문상풍요는 산청군 단성면 묵곡과 인근에 사는 33인이 학이재에 모여 읊은 416편의 시를 엮은 책이다. 시 속에서는 강학과 수학, 벗들과 교유, 묵곡의 아름다운 풍경과 풍류, 전원생활의 소박한 모습을 읊고 있다.

지리지는 포괄적인 지역의 옛 모습을 간략하게 개조식으로 나열하는 데에 비하여, 이 책은 묵곡마을에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진솔하게 담고 있어 묵곡마을을 이해하는 데 더없이 귀중한 기록이다. 향후 단성 묵곡마을의 정체성 파악과 역사문화 콘텐츠를 구성할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학이재 옆 문천과 풍영대. 바람 쐬고 시를 읊조리던 곳이다.


이정희 경상국립대 고문헌도서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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