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진주성 창렬사(彰烈祠) 제향(祭享) 유감(遺憾)
[경일춘추]진주성 창렬사(彰烈祠) 제향(祭享) 유감(遺憾)
  • 경남일보
  • 승인 2023.01.10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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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웅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강신웅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대다수의 사람들이 진주성을 처음 방문할 때는 진주성 동쪽의 촉석문(矗石門)으로 들어와 촉석루와 의기사(義妓祠) 그리고 남강의 의암 정도만 관람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관람 동선이 딱히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동선은 효과적인 관람이라고 볼수 없다. 어느곳으로 들어와도 상관 없으나 필자의 당부는 창렬사에 한번 들러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향후 진주성을 관람하고자 할 때는 북쪽에 있는 진주성의 정문인 공북문(拱北門)으로 입장해 곧장 우측의 영남포정사 문루(嶺南布政司 門樓)를 거쳐서, 박물관을 경유할 것을 권한다. 그리고 엄숙한 마음가짐으로 ‘창렬사(彰烈祠)’에 참배(參拜)의 예를 올릴 것을 당부한다. 44개의 가파른 계단을 오를 때에는 태산(泰山)보다 무거운 걸음으로 추모하는 몸가짐을 가져야한다.

순국의 엄숙함이 지배하는 공간, 창렬사는 430여 년 전인 1593년 당시 나라와 진주성을 지키다 순절하신 7만의 영령들을 모시고 있는 전국에서 하나 뿐인 상징물이다. 매우 엄중하고, 의미 깊은 이중문(二重門), 즉 유중문(有重門, 매우 정중하게 받듬)과 전파문(꽃다운 이름들을 후세에 길이 전함)이 있는 참담한 진주 역사의 상징이다.

경남도 문화재자료 제5호인 창렬사는 임진왜란 중 일본군의 진주성에 대한 보복적인 2차 침공으로 진주의 민·관·군이 장렬하게 순절했던 분들의 신위(神位)를 모신 곳이다. 1607년(선조40년), 당시 경상도순찰사였던 정사호가 창건한 사액사당이다. 제향은 1593년 계사년의 순국을 기준으로, 지금까지 430여회에 걸쳐 가장 많은 영령들을 위한 제향을 봉행해오고 있다.

그러나 같은 임진왜란을 겪었던 타 지역(남원, 금산 동래)에서의 그들 순절자들에 대한 제향은 일찍부터 국가제향으로 봉행하고 있다. 하지만 창렬사 제향은 오늘날까지도 지역의 위토답(位土畓, 관련 후손들의 문중에서 제사 봉행을 위해 남긴 전답)에만 의지해오고 있다. 그간 정부에서도 그 어떤 관심이나 지원도 하지 않아 지방제향으로 폄하(貶下)돼 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지역의 많은 사람들은 ‘창렬사의 제향’이 아직도 국가제향이 아닐뿐더러 국가제향이 될 수 없었던 이유조차도 잘 모르고 있다. 만시지감은 있으나 향후 지역민 모두는 이제부터라도 진주 창렬사 제향이 국가제향으로 승격될 수 있도록 모두 다양한 지혜와 마음을 모아 적극적인 노력을 지속적으로 전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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