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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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3.01.12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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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9)진주 이현동골목문화제 ‘두 고개 이야기’ 출간(3)
오늘의 이현동 시는 이미화와 장삼식의 시를 골랐다. 이미화는 <퐁네프의 화가>이고 장삼식은 <나불천 戀歌>이다. 이현동의 안개는 시를 부른다.

“다리를 만나면 안개는 조금씩/ 머뭇거리지/ 새벽부터 불켜진 덕희빌라 창문을 기웃대고// 고양이처럼 동그란 눈으로/ 하얀 아침 캔버스에/ 오늘은 또 무얼 그릴까 궁리하네// 퐁네프다리* 건너는 사람들은 다 알지/ 천변에 그려놓은 구절초가/ 덕희빌라 507호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라는 걸/ 기침을 달고 사는 김영감이 박꽃을 좋아한다는 소릴 한 뒤/ 천변에 가시박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는 걸// 나무 벤치에 앉은 엉덩이들이/ 어젯밤 동네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수양벚나무는 수액을 맞으면서도 고개 끄덕인다// 아침마다 다리 죽 펴고 우아하게 엎드린 화가/ 페르시안 고양이// 햇살이 이현동에 씌운 하얀 안개천을 벗기면/ 형광색 가방을 맨 촉석초등 아이들이/ 이마를 반짝이며 등교를 한다”

이 시는 모처럼 진주의 한 동네가 그려져 반갑고 정겹다. 그리고 그것은 시인의 정서와 생활이 구김살 없이 드러나 있다. 시는 무작정 어렵거나 철학적이거나 까다로운 언어의 숲을 제공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런 시를 읽는 이현동민들에게는 아주 낯익은 풍경에 즐거움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시는 시인이 만나는 생활공간이고 동네를 스케치한 그림같이 다가와 준다. 거기다 빠리의 제일 오래 된 퐁네프 또는 퐁네프다리를 연상할 수 있어서 독자로 하여금 빠리 쎈강에 온 것처럼 고급한 여행, 근사한 풍경으로 들 수 있다는 멋있는 어떤 격상을 누리게 하기도 한다. 가장 외진 곳인데 가장 고급한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시라고 생각하면서 시는 우리의 삶을 문화적으로 끌어올려 준다는 점에 마음이 머물 수 있게 된다.

다음은 시조 <나불천의 戀歌>를 읽기로 한다.

“둑방길을 걸어가며 나불천을 그려본다/ 그 시절 아련한 풀꽃향을 콧날에 심고/ 한 시절 떠난 여행길에/ 눈감고 떠난/ 발/ 걸/ 음// 도심을 가로지르는 나불천 물안개가/ 스멀스멀 남강으로 찾아와 잠을 깨우면/ 풍경이 풍경을 포개어/ 진주정신 물결 출렁// 다소곳 살풀이로 벙그는 연정이/ 다시 찾은 그 시절 한무리의 들국화/ 나불천 언덕빼기로/ 꽃향이 짙어온다// 이따금 쌓인 번뇌 가슴 쓸어 다독일 때/ 들꽃의 꽃바람이 코끝으로 살랑이면/ 갈 길을 잊은 풀향이/ 회전 그네 타고 있다”

이 시조는 4음보 네 걸음을 한 장으로 하는 3장이 기본 형식이다. 그런데도 자유시 쓰듯 그 리듬을 자유로 풀고 헝클어버린다. 시조의 현대적 모습의 하나이다. 나불천이 남강으로 이어지며 진주정신을 일깨운다. 거기 살풀이가 있어 7만 임란의 희생과 민족혼을 불러들인다. 그러니까 시조는 나불천을 통해 역사를 읽어내며 민족의 이름으로 연가를 부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 향은 언덕빼기의 들국화로 돌아와 회전그네의 동심에 이른다. 시조가 그리는 큰 그림이다. 장삼식 시인은 ‘현대시조’로 등단해 개천예술제 아헌관을 거쳐 초등 교장으로 정년한 중진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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