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제발 유치하게 싸우지 마라
[경일포럼]제발 유치하게 싸우지 마라
  • 경남일보
  • 승인 2023.01.12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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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홍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임규홍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이전에는 우리집도 여느 집처럼 명절때는 형제들이 모여 즐겁게 보냈다. 모두 술을 좋아해 술잔을 기울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이야기 중에 간혹 목소리가 커지는 때가 있었다. 그럴 땐 으레 정치가 화제일 때였다. 장남인 큰형님은 극보수에 가깝고 막내는 진보에 가깝다. 형제도 정치적 진영이나 이념에는 양보가 없는 듯이 예민해 진다. 그래도 형제이니 목소리는 이내 가라앉고 말머리를 다른 데로 돌린다. 그래서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정치나 종교 이야기는 가능한한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 것은 그냥 나온 소리가 아닌 듯하다.

일전 모 일간지 여론 조사에서 정치 성향이 다르면 밥도 같이 먹기 싫다고 한 사람이 40%에 이른다고 한다. 그리고 가장 불편한 상대는 40.3%가 지지 정당이 다른 사람이라고 한다.

우리는 왜 사람 사귀는 것도 이렇게 편이 갈라져 살아야 하는가. 지금 우리나라는 이념이나 정치적 진영이 극단적으로 둘로 나뉘어 있다. 이런 현상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심한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듣기도 민망한 개딸이니 광적이라는 팬덤이니 하는 신조어까지 쓰고 있다. 상대 진영에서 어떤 일을 하든 그것이 맞고 틀림과 관계 없이 싫어하고 부정한다. 이름만 들어도 밥맛이 떨어진다고 한다. 반대로 자기가 좋아하는 정치가는 인성이고 뭐고 불문하고 신격화해 광신도처럼 그를 믿고 따르고 있다. 언론들도 그걸 즐기는 듯이 편가르기에 열광하고 부추기고 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땅덩어리도 그다지 크지도 않은 작은 나라이면서 세계에서 마지막 남은 분단 국가다. 세계에서 마음대로 갈 수 없는 곳이라고는 오직 북한뿐이다. 그럼에도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선진국 대열에 줄을 설 수 있다는 건 기적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남북한이 갈라져 있는 것만으로도 한스러운데 남한은 남한대로 이렇게 생각의 골이 깊게 두 편으로 나뉘어 날이면 날마다 서로 죽기 살기로 싸우고 있으니 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현상이 깊어지면 어떻게 될까.

사람마다 이념이 다르고, 정책이 다를 수 있다. 다양한 정치적 이념이나 정책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다름이 문제가 아니라 상대를 무조건 미워하고 까닭도 없이 비난하고 헐뜯고 있으니 그게 문제다.

생각이 극단적이면 판단도 그렇게 된다. 내가 죽어도 상대와는 같이할 수 없으니 통합된 정책은 나올 수 없다. 국가는 분열되고 국민의 힘은 점점 쇠락해질 수밖에 없다. 나라가 망한다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보면 편을 만들고 생각이 고착화되면 사회성이 떨어진다. 만남의 폭은 좁아지고 질은 떨어진다. 그런 사람은 남을 배려하거나 이해하거나 용서하는 마음이 점점 없어지게 된다. 모든 일에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로 변하기 쉽다. 결국 개인적으로도 불만과 스트레스가 쌓여가니 심신이 고통스럽다. 불행해진다.

경남에서는 지난 연말 12월 30일 오후 도청 대회의실에서 이름도 좋은 ‘사회대통합위원회’가 공식 출범식을 갖고 활동에 들어갔다고 한다. 21개 분야 69명의 민간 위원들이 위촉돼 활동을 펴나가게 됐다고 한다. 다행이고 잘되길 바란다. 그런데 그 이름처럼 사회를 잘 통합할 수 있을까. 계층과 세대, 빈부, 노사, 지역 발전, 산업 등의 갈등은 좋은 정책과 예산이 뒷받침만 되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골 깊고 역사가 오래된 정치와 이념을 어떻게 통합할 수 있을까. 그것은 성숙한 시민의식이나 양보와 배려라는 정신적 소양이 필요한 부분이다. 내로남불이 아니라 역지사지의 교훈을 체득할 때 통합이 가능하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말도 필요하고, 이해나 용서라는 말도 필요하고, 자비라는 정신적 세계도 필요하다. 인성의 순화가 어느때보다 요구되는 시대다.

정치는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생사가 걸린 전쟁이 아니다. 국민이 다 같이 잘 살기 위해 정치를 하는 것이다. 유치한 말싸움이나 하라고 그 많은 세비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와 우리 후손들이 잘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품격이 있고 인성이 갖추어진 정치가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제발 올 한해는 남들과 조금 덜 싸우고, 남들을 덜 미워했으면 좋겠다. 대신 좀 더 사랑하고, 좀 더 배려해서 이 나라가 조금이라도 더 잘 살고 편하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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