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진희 진주갈전초등학교 교장

친정식구 서넛이 모이는 단체 톡방에 언니가 소식을 물었다. “나는 퇴근하고 집에 오면 제일 먼저 TV를 켜는데 다른 집들은 어때?” “어, 나도 그렇는데” 라고 답한 뒤 무심코 했던 나의 행동을 언니도 하는가 보다 라고 생각했다.
나도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으레 퇴근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TV를 켜고 저녁을 준비한다. 보지도 않을 TV를 굳이 켜놓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식들이 다 커서 떠나버린 빈 둥지에 아이 소리가 그리워서일까. 적막함이 싫어서일까, 종일 타인에게 맞춰 살다가 지친 직장인에게 TV는 알아서 묻고 답하니 편해서일까?
텔레비전은 구십을 넘으신 친정 엄마의 없어서는 안 될 친구이기도 하다. 퇴근 후 드리는 안부 전화에 울 엄니는 우리를 안심시킨다. “아이고 걱정 마라, 외롭지 않다. 사람 여러 명하고 있다. 테레비 안에 사람 쌨다.” 당신은 사람 소리가 그리워서 TV를 켜놓고 계실거라는 생각을 했다.
온 가족이 함께 보는 TV가 아니라 혼자서 가지고 노는 똑똑한 기기를 만나는 세대, 그들에게 더 이상 뜨끈한 아랫목 이야기나 가족이 함께 모여 TV를 보는 풍경은 없을 것인가?
코로나19가 시작됐던 2021년 그해, 텔레비전 판매율이 급증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우리 집도 20년 넘게 사용해 왔던 TV가 하필이면 그 즈음에 고장 나서 큰맘 먹고 최신형 대형 UHD TV로 바꿨다. 그런데 TV를 선택하고 새로 설치하는 며칠 동안 TV가 없어 그 허전함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것 같았다. ‘TV가 언제부터 내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물건이 됐지?’ 텔레비전 없던 어린 시절에는 온 식구가 온돌방에 깔아놓은 이불에 발 함께 넣고 오순도순 사람 냄새 풍기며 지냈었는데 말이다.
베이비 붐 세대로 분류되는 나는 지친 하루를 보상 받는 휴식의 명분으로 보지도 않을 TV를 굳이 틀어놓는다.
TV는 혼자서 잘도 떠든다.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세상사 희로애락을 다 짊어지고 집안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나는 그 TV를 등지고 누워서 알파세대의 전유물로 상징되는 스마트폰 유튜브로 요즘 상종가를 치고 있는 가수 임영웅의 노래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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