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설날과 부모
[경일춘추]설날과 부모
  • 경남일보
  • 승인 2023.01.18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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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재 전 서진초등학교장
박상재 전 서진초등학교장


퇴임 후 지인(知人)들과 바닷가 횟집을 찾았는데 대야에 누워 있는 ‘광어’가 눈에 들어왔다. 여름 어느날 홀연히 세상을 떠나신 아버님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생전 아버님은 회를 좋아하셨다. 1978년 그러니까 45년 전 여름, 울주 동해 바닷가에 근무하던 나는 회를 좋아하시는 아버님이 생각 나 인근 고기 집에 가서 큰 후라이팬 만한 광어를 샀다. 당시 돈으로 ‘만원’이었다. 4시간이 걸려 진주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마자 전화로 어머니께 회초장을 부탁드리고 맥주와 묵직한 광어를 갖다 드렸다.

멀리서 아들이 사온 광어를 회로 뜨시던 어머니는 대뜸 “낳지 말라던 막내 그때 안 낳았으면 당신은 오늘 회도 못 얻어 잡술 뻔했소” 하셨다. “그러게 말이다.” 아버님은 그날 회를 참으로 맛나게 드셨다. 그때가 벌써 반세기가 다 돼가는데 그 모습이 마치 어제일 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내가 아버님 나이가 되고 세 손녀를 둔 복 많은 할아버지가 되고 보니 여름을 따라가신 아버지, 단풍을 쫓아가신 어머니가 더욱 사무치게 그립다.

어느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죄수들에게 “세상에서 누가 가장 보고 싶냐?”고 물었더니 ‘엄마와 어머니’라는 답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엄마와 어머니의 차이를 물으니 “엄마는 내가 엄마보다 작았을 때 부르고, 어머니는 내가 어머니보다 컸을 때 부른다”고 했다. 즉 엄마라고 부를 때는 자신이 철이 덜 들었을 때였고, 철이 들어서는 어머니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첫 면회 때 어머니가 오시자 자신도 모르게 어머니를 부여안고 “엄마~!”하고 불렀다고 한다. 세상 어디에도 엄마와 어머니의 정의를 명확하게 한 곳은 없겠지만 엄마와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다.

불가의 ‘부모은중경’에 따르면, 어머니는 우리를 낳을 때 33병의 피를 주시고, 낳아서는 1240병의 혈유(血乳)를 주셨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는 주민등록증 외에 또 하나의 증(證)을 갖고 있는데 바로 ‘골다공증’이다. 그 힘든 설날, 내 어머니 냄새가 문밖까지 손짓이 되고 내 아버지의 그리움이 먼 길까지 마중을 나오기에 우리는 웃으며 그 품에 안기러 간다. 설날 온 세상 하얀 눈을 언 손 불며 쓸고 쓴 마당길은, 종일 자식들 기다렸을 아버지 어머니의 숨결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이젠 치울 이 없어 눈 쌓인 그 길을 그리움이 사무쳐 눈물로 녹이며 간다. 꽃에 꿀과 향이 없으면 벌 나비가 찾아오지 않는 것처럼 사람에게 따뜻함이 없으면 사람이 찾아오지 않게 되고 사람에게 사랑이 없으면 머물러 있는 사람이 없게 됨을 흰머리 주름 속에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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