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 푸른 도전] “땅으로 생긴 빚, 땅에서 갚고 있죠”
[인생 2막 푸른 도전] “땅으로 생긴 빚, 땅에서 갚고 있죠”
  • 정희성
  • 승인 2023.01.18 17: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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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 달방앗간 안지 이하담 대표 '벼농사-방앗간-카페'로 연결
11년 전 사고로 부친 세상 떠나며 빚 15억원·4만평 땅 물려 받아
농기센터 강소농교육 큰 힘…“지금부터는 오롯이 내 노력의 시간”

8년 전 의령군으로 귀향한 이하담 대표(41)는 2만평 규모의 논에서 벼농사와 함께 ‘달방앗간 안지’와 ‘카페’를 운영하며 의령군 특산품인 망개떡과 커피를 판매하고 있다.

평범하게 회사를 다니고 있던 이 대표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불가피하게 귀농을 선택했다. 이 대표의 부친은 11년 전 혼자 논에서 야간작업을 하다 불의의 사고를 당하며 그의 곁을 떠났다. 그 때 이 대표의 나이는 31살에 불과했고 큰 아이가 막 100일이 지났을 때였다.

의령군에서 2만평에 달하는 대규모 벼농사를 짓고 있는 이하담씨. 그는 이 곳에서 방앗간과 카페도 운영하며 하루하루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 대표는 “당시 아버지께서 거의 4만평이 넘는 규모의 농사를 짓고 계셨는데, 졸지에 제가 많은 일을 감당해야만 하는 처지가 됐다. 지금은 절반으로 줄었지만 그래도 쌀 40㎏ 포대로 대략 1000포, 40t 이상을 생산하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이 대표의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창원으로 간 그는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취직에 성공했다.

그는 “아버지를 거의 돕지 못했다. 저와 아내는 모두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저는 인터넷 관련 대기업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당시 입사 6년차였다”며 “농사를 이어 받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아버지께서 많은 빚을 남기고 가셔서 그것을 해결하느라 더욱 힘이 들었다”고 전했다.

이어 “저의 선친은 땅에 대한 욕심이 대단히 많았다. 그러다보니 땅을 사기 위해 빚을 졌는데 액수는 15억원 정도였다. 이자로 나가는 것만 해도 매달 500만원이었다”며 “아버지께서 그 해 종사를 뿌려놓고 돌아가시는 바람에, 제가 가을걷이를 전부 해야 했다. 당시 4만평의 논을 전부 혼자의 힘으로 감당했다. 보통 농가에서는 10월에 수확을 다 마치는데 저는 크리스마스 전날까지 수확을 했다”며 고달팠던 옛일을 회상했다.

그는 귀농 후 3년 동안 죽을 힘을 다 해 농사에만 매진했다. “정말 이렇게 일하다가는 죽을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을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일의 규모를 조금씩 줄여 나갔다. 하지만 둘째가 태어나 식구가 늘면서 이 대표 부부는 금전적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방앗간을 시작했다.

이 대표는 “어차피 제가 수확하는 쌀만해도 적지 않으니 방앗간을 시작하게 됐다. 벼농사의 장점은 영농과정이 기계화 됐기 때문에 다른 농사에 비해 일손이 적게 들어간다. 돈을 벌기 위해 방앗간을 시작했고 거기에 더해 의령군 대표상품인 망개떡을 만들었다”며 “저희 방앗간이 호암 이병철 회장의 생가 바로 앞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그래서 카페도 차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방앗간에서 망개떡을 직접 만들고 있다. 망개떡 만드는 것은 아내 몫, 참기름을 짜거나 고춧가루를 빻거나 하는 것들은 제 몫이다. 카페 운영은 아내와 제가 분담해서 하고 있고 손님이 많은 주말에는 아르바이트생을 쓰고 있다. 그리고 농사는 오롯이 저의 몫”이라고 했다.

초보 농사꾼이 이처럼 농촌에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강소농 교육이 큰 도움이 됐다.

주변의 권유로 2018년부터 의령군농업기술센터에서 진행하는 강소농 교육에 참여했고 다음해에는 그의 아내도 동참했다.

이 대표는 “농장 경영에 대한 전반적인 학습을 받을 수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됐다. 특히 경남도농업기술원 강소농지원단에 있는 민간전문가가 다양한 분야에서 컨설팅을 해줬다. 저희는 1차 생산과 2차 가공, 3차 판매까지 겸하고 있는데 6차 산업 인증 취득을 통한 농장의 장기발전방안을 제시해줬다”며 “저 혼자 막연하게 생각만으로 그렸던 꿈을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구체화 시켰다. 얼마 전에 완료한 방앗간과 카페의 리모델링 과정도 세심하게 짚어 줬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도움을 요청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11년 전 귀농 후 8년까지는 부친의 빚을 갚는 시간이었다면 지금부터는 온전히 이하담, 저의 시간이다. 지금은 저만의 것을 창조하는 시간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이 대표는 힘든 시기를 함께 잘 버텨 준 아내 박지은씨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고 했다.

“결혼하고 첫 아이 백일이 지나자마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그리고 한 달이 채 안 돼 할아버지도 세상을 떠났다. 그 무렵에 둘째를 가지게 됐는데 정신적,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어하면서도 정말 잘 버텨줬다. 또 부모님께도 감사드린다. 많은 시련속에서도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주셨다.”

이 대표의 꿈은 빨리 빚을 다 갚고 55세에 은퇴를 하는 것이다. 돈을 많이 모으는 것보다 돈을 버는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는 이 대표는 “제가 생각하는 부자는 ‘노동을 하지 않아도 자산이 줄어들지 않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쌀농사를 짓고 방앗간과 카페를 운영해서 나오는 소득의 일정 부분만 제가 가져가고, 나머지는 전부 일하는 분들에게 돌려 줄 생각이다. 저만의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은퇴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제가 행복해야 가족도 행복해 진다. 제가 따뜻한 사람이 돼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따뜻함을 전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는 끝으로 후배 농업인과 귀농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농업은 여전히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에게는 삭막하고 경쟁이 치열한 도시보다 오히려 농촌이 나을 수 있다. 물론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며 “정신만 똑바로 챙기면 도시보다 이 곳(농촌)이 훨씬 좋다”고 강조했다.

정희성기자


 
이하담 대표가 운영하고 있는 방앗간과 카페 모습.
이하담 대표가 방앗간에서 생산하고 있는 의령망개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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