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입춘서 ‘건양다경’ 쓰지 말아야
[기고] 입춘서 ‘건양다경’ 쓰지 말아야
  • 경남일보
  • 승인 2023.01.19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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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헌국 (전 진주교육장)
올해는 입춘서(立春書)를 바로 알고 쓰자. 입춘서에 건양다경(建陽多慶)은 제발 쓰지 말자.

새해를 맞이하고 첫 절기인 입춘이 되면 각 가정에서는 대문이나 문설주에 좋은 일이 있기를 바라며 풍속에 따라 좋은 글귀의 입춘서를 써 붙인다. 이전에는 입춘대길(立春大吉)의 댓귀로 만사형통(萬事亨通)이나 소원성취(所願成就)를 썼는데 요즘에 와서 대개가 입춘대길에 짝을 맞추어 건양다경을 쓰고 있다.

입춘서로 이전에 쓰이던 댓귀나 대련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국태민안 가급인족(國泰民安 家給人足), 우순풍조 시화년풍(雨順風調 時和年豊), 부모천년수 자손만대영(父母千年壽 子孫萬代榮), 수여산 부여해(壽如山 富如海), 소지황금출 개문백복래(掃地黃金出 開門百福來), 거천재 래백복(去千災 來百福), 재종춘설소 복축하운흥(災從春雪消 福逐夏雲興) 등이다.

그런데 요즘 흔히 쓰고 있는 ‘건양다경’이라는 한자성어나 ‘다경’이란 단어는 원래 사전에도 없는 말로서 출처를 잘 알지도 못하고 많은 사람이 좋은 글귀로 알고 붙여 새로 만들어 쓰고 있다. ‘건양’은 1896년 이전에는 문헌에 보이지 않고 전혀 쓰이지 않던 말로서 그 유래를 알고 보면 쓰기에 아주 부적합한 말이다. (인터넷 나무위키에서는 입춘서를 설명하면서 입춘대길은 남인의 거두 미수 허목이 만들었고 건양다경은 우암 송시열이 만들었다는 맞지도 않는 출처를 보여주고 뜻풀이를 하고 있다.)

건양(建陽)은 조선 26대 고종임금이 1895년 11월 17일을 개국 505년 1월 1일로 하며 1896년 양력을 채용하며 사용한 연호이다. 종래 사용한 청나라 연호 대신에 새 연호를 만들어 사용함으로 청나라와의 종속관계를 벗어나게 한다고 하지만 속내는 일제가 조선 침략을 위한 첫 단계에서 한 일이다.

이 말이 나온 시대적 배경은 1894년(갑오년)에 일본 공사가 내정개혁을 강요하는 가운데 양력을 쓰게 하고 ‘건양’이라는 연호를 사용하게 하면서 ‘양력을 사용하면 경사스런 일이 많다’고 하는 의미이다. 그런데 1895년(을미년)에 고종의 왕비 민씨가 일본 낭인들에 의해 시해되고 불안을 느낀 왕과 왕세자는 ‘건양’이라는 연호를 쓰기 시작한 1896년(병신년) 2월에 러시아 공관으로 거처를 옮겨 1년을 머물다가 1897년(정유년) 2월에 왕궁으로 돌아와서 8월에 쓰던 연호를 광무(光武)로 바꾸었다.

갑오년 이후는 외세에 빌붙은 대신들이 활개를 치며 나라가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이 무렵에 잘못된 역사용어와 문화와 제도들이 들어왔다. 잘 가려서 바로 사용해야 할 것이다. 이 가운데 하나가 잘못된 입춘서이다. 제발 바로 알고 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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