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꽃처럼 살포시 썰어낸 생치 생떡국
[경일춘추]꽃처럼 살포시 썰어낸 생치 생떡국
  • 경남일보
  • 승인 2023.01.19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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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이학박사
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이학박사


석탈해는 신라 4대 왕이다. 석씨 왕가시대를 열었다. 2대 왕 남해는 아들 유리가 아닌, 사위 탈해를 왕으로 삼으라는 유훈을 남겼다. 탈해는 왕이 되고자 하지 않았다. 태자에게 왕권을 이양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선왕의 유훈을 무시할 수 없었다. 떡을 입에 물어 잇자국이 많이 나는 사람을 왕으로 추대하자고 제안했다. 젊은 태자의 잇자국이 더 많았다. 유리가 신라 제3대왕 이사금(尼師今)으로 낙점된 장면에는 떡이 있었다.

떡에 대한 기록은 삼국시대 원시 농경사회에서부터 나타난다. 고려시대의 떡은 소선식(素膳食)으로서 발달했고, 조선에서는 중국과 아랍의 영향을 받은 두텁떡까지 등장했다.

방앗간이라고 해봤자 디딜방아, 연자방아 같은 재래식 기구뿐이었다. 가래떡은 집에서 직접 만들었다. 공정 과정이 복잡하고 엄청난 노동의 결과물이 떡이었다. 인절미도 집에서 빻고, 거르고, 쪄내 떡메를 쳐 만들었다. 떡메는 남정네들만의 일은 아니었다. 명절을 치른 며느리들은 어깨 신경통을 달고 살았다. 시누이 시집보내려면 어깨가 빠진다고 했을 만큼 떡 만들기는 품이 많이 드는 고강도 노동이었다. 가래떡을 대량으로 만들지 않고 쌀가루를 뜨거운 물로 익반죽해 즉석에서 만드는 생떡국도 있었다. ‘날떡국(생떡국의 다른 이름)에 입천장만 덴다’는 속담처럼 서민의 생떡국은 반죽을 마구잡이로 뚝뚝 떠 넣었다.

반면 사대부가에서는 생떡국이 오히려 고급이다. 같은 재료지만 다른 메뉴다. 쌀가루에 각종 천연염료를 넣어 색색으로 반죽해 길게 늘인다. 꽃모양으로 만들어 잘라내면 더 곱다. 찹쌀가루를 살짝 넣어 점성을 더하기도 한다. 자칫 모양이 흐트러지기 쉬워 살포시 잡고 썰어낸다. 입에 넣으면 부드럽게 녹는다. 주로 제사상이나 어른들의 밥상에 올렸다.

떡국의 육수로는 꿩만 한 것이 없다. 누린내가 없는 담백한 맛이다. 꿩고기는 한자로 생치(生雉)다. 생치 생떡국은 떡국의 하이라이트이다. 꿩은 예로부터 신성한 것으로 여겨 ‘하늘닭’이라고 했다. 꿩이 귀해지자 대체물로 닭을 사용해 꿩 대신 닭이 되었다. 꿩 사냥은 동지 후 세 번째 미일(未日, 십간십이지의 8번째 날)인 납일 풍속이다. 납일에는 참새도 잡아먹었다. 초가지붕에 숨은 겨울 참새는 황소 한 마리보다 맛있다고 했다.

꿩을 잡고, 떡메를 치던 설날의 풍경은 아득한 고전이 돼버렸지만, 아직도 겨울의 한 모퉁이에서 만나는 정겹고 따뜻한 정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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