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영화 '영웅'에서 느낀 진한 감동
[경일포럼]영화 '영웅'에서 느낀 진한 감동
  • 경남일보
  • 승인 2023.01.24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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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점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지난해 12월에 개봉한 영화 ‘영웅’은 안중근이 초대 일본 내각 총리대신이자 초대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를 총살하기까지의 전후 1년간을 찍은 영화다. 영화 앞부분에서 안중근이 ‘단지동맹’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하얀 눈이 끝없이 펼쳐진 광대한 설원이 배경이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단지동맹을 통한 뜨거운 맹세와 설원의 황량한 풍경 그리고 비장한 가사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1909년 2월, 자작나무 숲에서 안중근과 11명의 동지들이 모여 왼손 약지를 끊으며 대한제국 침략의 원흉 이토를 3년 내에 처단하지 못하면 자결하기로 맹세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1909년 10월 26일, 의병 참모중장 안중근 의사가 쏜 세 발의 총에 맞은 지 30여 분만에 죽었다. 죽은 이토 히로부미에게 일본왕은 충정군(忠貞君), 조선왕은 10월 28일, 문충공(文忠公)이란 시호를 내렸다. 대한제국 왕실은 흉악한 역도의 행동에 통분을 금할 수 없다면서 즉시 일본으로 위문사를 보냈다. 10월 27일, 순종이 친히 통감부를 찾아 조문했으며 곧바로 내각 명령으로 29일부터 31일까지 사흘 동안 조의를 표하기 위해 서울 시내 일원에 일체의 가무·음곡을 금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11월 2일, 태황제인 고종이 직접 통감관저에 마련된 빈소에 가서 강제로 자신을 폐위시킨 이토의 죽음을 애도했다. 11월 4일, 일본 국장으로 도쿄 히비야 공원에서 장례식을 치렀고, 같은 날 서울 장충단에서 대한제국 정부 주도로 관민추도회가 열렸다.

체포된 안중근은 민족의 독립을 위한 전쟁에서 일어난 일이므로 포로의 대우를 하라고 요구했지만 1심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당연히 부당한 재판이므로 항소를 권유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 조마리아의 생각은 달랐다. 아들이 입고 형장으로 갈 수의와 함께 보낼 편지를 썼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어미가 아들에게 살려고 하지 말고 죽으라는 말을 하는 기가 막히는 심정을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아들의 배냇저고리를 끌어안고 울면서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라는 노래를 불렀다. 이 영화의 최고 명장면이다. 울지 않는 관객이 없었다. ‘내 아들, 나의 사랑하는 도마야/ 떠나갈 시간이 왔구나/ 두려운 마음 달랠 길 없지만 큰 용기 내다오/ 내 아들, 나의 사랑하는 도마야/ 널 보낼 시간이 왔구나/ 멈추지 말고 뒤돌아보지 말고 큰 뜻을 이루렴/ 십자가 지고 홀로 가는 길/ 함께 할 수 없어도/ 너를 위해 기도하리니 힘을 내다오/ 천국에 네가 나를 앞서 가거던/ 못난 이 어미를 기다려 주렴/ 모자의 인연 짧고 가혹했으나 너는 영원한 내 아들/ 한 번만, 단 한 번만이라도 너를 안아봤으면/ 너를 지금 이 두 팔로 안고 싶구나’

1910년 3월 26일 안중근이 처형 당했다. 그의 나이 33세였다. 이즈음 ‘이토 암살자 안중근’이라는 제목으로 얼굴 사진엽서가 발행됐다. 안중근 사진의 상품적 가치를 감지한 일본인 사진사들이 대량 복사해 국내외에서 판매했다. 그런데 ‘범죄자 안중근’을 부각시키려던 애초의 의도와는 달리 안중근을 숭모하는 조선인들 사이에 예상치 못한 유행을 일으켰다. 평양 등지에서는 사진 300 개를 팔고도 모자라서 각 사진관에 주문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심지어 어떤 분은 ‘충신 안중근’이라고 쓴 사진엽서를 제작했다고 한다. 다급해진 일제는 사진과 엽서발매를 금지하고 압수했다. 벌써 안중근은 영화 제목처럼 영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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