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도시락의 추억
[경일춘추]도시락의 추억
  • 경남일보
  • 승인 2023.01.24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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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재 전 서진초등학교 교장
박상재 전 서진초등학교 교장


초등학교 3학년 시절 우리들은 사이가 안 좋은 짝지끼리는 거의가 책상 위에 38선처럼 책상을 2등분해 서로의 영역을 넘지 못하도록 했지만 짝지와 다정한 시간이 있었는데 바로 점심시간이었다. 그는 집이 부자라 언제나 도시락이 진수성찬이었다. 눈이 부시도록 휜 쌀밥과 오징어무침 고기장조림 등 안 친할 수가 없었다. 내 도시락은 먹고 나면 언제나 김치국물이 가방을 적셔 국물 냄새가 책 속까지 스며들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조금 빨리 걸으면 달그락 거리는 빈 도시락 소리가 마치 음악처럼 들렸다. 내 도시락은 언제나 김치와 고추장이었고 계란반찬을 해오는 친구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시험점수에 따라 선생님께 손등이나 손바닥을 맞았다. 유난히 수학을 싫어했고 못했던 나는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선생님 도시락을 약 200m 떨어진 집에서 가져오는 심부름을 자청했다. 그럼 한 시간 시험을 안보니 손바닥을 안 맞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도시락을 가져오면서 선생님 도시락이 너무 궁금해 열어보고는 반찬을 한 두개 맛보고 손가락을 빨며 도로 싸가지고 오는 게 낙이었다. 그렇게 초등학교의 아픈 시절이 갔다. 고교 2학년 시절 분명히 아침을 먹고 왔는데 2교시만 지나면 배가 고팠다.

어느 날인가 어머니께서 큰마음 먹고 김밥을 싸주셨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 자랑스러워 친구들에게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점심시간을 기다리고 기다려 도시락 뚜껑을 여니 김밥이 하나도 없었다. 못된 친구 녀석이 내 김밥을 손으로 몇 개 집어 먹자 다른 녀석도 니도 내도 한두 개씩 집어 먹어서 그렇단다. 그날 나는 서러움과 분노에 찬 점심을 빵으로 때웠다.

세월이 가고 내가 교장이 되어 학교 앞 식당에 가니 그 친구 녀석이 기관장이 되어 직원들과 함께 왔다. 반갑기도 했지만 그때 그 추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지금도 김밥을 보면 학창시절 친구들 생각에 한 번씩 웃는다. 추운 겨울! 석탄 난로 위에 산더미 같이 쌓인 찬 도시락을 뒤적이며 데워 먹던 돌아갈 수 없는 빛바랜 추억에 가슴이 아리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통은 그리움이라 하는데 어려서는 어른이 그립고, 나이가 드니 젊은 날이 그립다. 이제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그리운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 나를 그리워해 주고, 나도 누군가가 그리운 따뜻한 날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사람이 그리워야 사람이다! 버리고 비우면 또 채워지는 것이 있으리니…. 나누며 살다가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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