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남명 선생의 밥상을 그리다
[경일춘추]남명 선생의 밥상을 그리다
  • 경남일보
  • 승인 2023.01.26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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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이학박사
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이학박사


남명은 조선의 상남자였다. 구차하지 않고, ‘죽으면 죽으리라’ 고 나아갔던 강직한 성품이었다. 그는 오늘의 진주정신을 태동시켰다. 흥미롭게도 진주 교방음식의 첫 번째 기록을 남명의 ‘유두류록’에서 찾는다. 교방음식은 진주 수령이 베풀었던 연회식이다. 1558년 4월 12일, 진주목사였던 김홍이 음식을 보내와 다투듯 술을 마셨다. 13일에는 김홍이 소를 잡아 잔치를 열었다. 사천 군수 노극수(魯克粹)도 술자리를 만들었고 술과 안주를 배에 실어주고 돌아갔다. 봉월(鳳月), 옹대(甕臺), 강아지(江娥之), 귀천(貴千)과 피리 부는 천수(千守)을 포함한 열 명의 기생은 피리, 생황, 북, 나발을 벌여놓았다.

대낮처럼 달이 밝고, 은빛 물결 잔잔하던 밤, 사공들이 번갈아 부르는 노랫소리는 길게 메아리졌다. 약 500년 전의 일이다. 풍악이 울리고 소 한 마리를 잡았을 정도면 잔치는 꽤 컸을 것이다. 당대에도 한식의 최고 가치인 발효과학이 눈부셨다. 고조리서에는 생선을 쌀밥과 소금에 발효시킨 어식해, 꿩고기 식해. 도라지와 죽순으로 담는 식해도 기록돼 있다. 닥나무 이파리를 넣은 송이버섯 김치는 맛의 궁금증을 더한다. 송이는 삶아 하룻밤을 재우고 삶은 물과 함께 항아리에 담아 차게 둔다. 띠풀을 얹고 돌로 눌러서 열흘이 지나면 송이를 건져내고 물을 갈아 다시 담근다. 이십일 동안 자주 물을 갈아주면 송이가 해를 지나도 맛이 그대로다. 수박도 복숭아도 살구도 소금과 꿀로 저장했다.

성대한 차림 앞에서도 남명은 음식의 귀함과 노동의 가치를 외면하지 않았다. 남명은 ‘진주 아전 강국년이 음식을 도맡고 있어서 계옥(桂玉)의 소중함을 모른다’고 썼다. 계옥은 계수나무처럼 비싼 땔감과 옥처럼 비싼 쌀이라는 뜻이다.

필자는 교방음식을 분류해 ‘진주성 꽃상’, ‘진주 목사, 관찰사 밥상’, ‘남명의 지리산 진짓상’, ‘남명의 지리산 주안상’, ‘진주 사대부 밥상’ 등을 복원했다.

2019년 제정된 한식진흥법에는 ‘국가와 지자체는 한식의 발굴 복원 및 계승발전을 위해 노력해야한다’고 돼 있다.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내 고장 음식 발굴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법에 근거한 지자체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풍요롭고 윤택한 문화유산인 진주교방음식은 지자체의 노력이 요원한 상태다. 교방음식의 계승 발전은 단순히 음식에 국한된 것이 아닌, 진주문화의 계승이다. 새해에는 진주시의 적극 행정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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