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고문헌 [5]당사주와 토정비결
경남의 고문헌 [5]당사주와 토정비결
  • 경남일보
  • 승인 2023.01.26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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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초하루 점을 치며 운수를 가늠한 우리 선현들
당나라서 건너온 ‘당사주’...평생운 등 간단하게 점쳐
육십갑자 이용한 토정비결 오늘날 것 1920년경 등장
계묘년 토끼해가 밝았다. 어른들은 그믐날 밤잠을 자게 되면 눈썹이 하얗게 세어진다고 했다.

그래서 그믐에는 집마다 불을 환하게 밝히고 가족 친지가 모여 밤새 지난해 있었던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눴다. 새해 아침 세배를 마치고 나면 어른은 가족들의 한 해 운수를 점치고 논평하는 세시풍습이 있었다. 가족들은 지난해를 돌아보고 새해에는 더 나은 운수가 열리기를 희망했다.

◇고문헌도서관 소장한 ‘당사주와 토정비결’

고문헌을 수집하다 보면 자신의 미래를 점치고, 묏자리를 살피는 문헌을 간혹 발견하게 된다.

새해 신수를 점치는 책으로 윷점, 당사주, 토정비결 등이 대표적이다. 고문헌은 온통 검은 먹으로 기록된 한자 일색이다. 켜켜이 쌓인 먼지를 떨어내고 책장을 넘기다 보면 우연히 화려한 채색 그림이 등장하는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책이 ‘당사주’라는 책이다. 당사주는 당나라 때 이허중이 12개의 별자리와 태어난 연월일시를 대응시켜 초년·중년·말년· 평생운을 간단하게 점치는 방법을 고안해 낸 것이다. 이 점술법이 당나라에서 건너왔다고 해서 ‘당사주’라고 이름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8~19세기 무렵 민간에서 유행했는데 이허중의 해설에 화려한 그림을 더하여 점괘의 결과를 누구나 직관적으로 알기 쉽게 풀이했다. 보는 방법은 자신이 태어난 해에 해당하는 것이 초년의 운세다. 초년의 운세에서 자신이 태어난 달을 더하면 중년의 운세가 된다. 중년의 운세에서 태어날 날짜를 더하면 말년의 운세가 된다. 12성 중에서 천귀·천복·천권·천간·천문·천예·천수의 7성은 길성이고, 천액·천파·천역·천고· 천인의 5성은 흉성이다. 예를 들어 갑자년에 태어난 사람의 생일이 3월 5일이라면, 초년 운은 천귀성, 중년 운은 천파성, 말년 운은 천고성이 되는 것이다.

 
고문헌도서관 소장 당사주와 토정비결
◇윳책이라(1915년경)

이 책은 청주한씨 문정공파 병사공 종중에서 2010년에 영구기탁한 고문헌 중 하나다.

책에는 ‘가회댁, 책주는 묵실댁’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책의 주인은 합천군 가회면 묵실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묵실댁은 산청 묵곡의 유학자 혜산 이상규와 지수면에서 시집온 김해허씨 부인 사이에서 1901년 외동딸로 태어난 이필헌으로, 15살 때 묵곡에서 합천 가회에 사는 12살 신랑 한경우에게 시집을 갔다. 이 윳책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인지, 이필헌이 시집가서 직접 만든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이필헌이 직접 사용한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 윳책은 윷을 굴러 점을 치는 오행점의 일종이다. 전체가 한글로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의 특이할 점은 책에 무명 주머니가 앙증맞게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 주머니 속에는 윷가락이 들어 있었다. 책에서 윷이 이탈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윷을 굴러 나오는 수에 따라 1년 운수를 점치는 것이다. 본문을 살펴보면, “옛일을 고쳐 새로이 하는 것이 좋으리라. 고기가 용문(龍門)에서 뛰고 노니, 범인이 신선이 된다. 따라서 일을 의논하고 있을 때 귀인이 와서 영화를 누리게 만들어 준다”라고 했다. 이 책에는 ‘윷’을 ‘윳’으로, ‘고기’를 ‘괴기’로 기록한 경남지역 언어가 간간이 등장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녹음기가 귀했으므로 지역민의 생생한 언어도 연구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기도 하다.

 
윳책이라. 윷가락을 넣어 두었던 주머니가 달려 있다.

◇토정비결

이 책은 생년월일과 육십갑자를 이용해서 한 해 동안의 운을 점치는 책이다.

토정비결은 토정 이지함이 만들었다고 알려졌지만, 이지함의 호인 ‘토정’을 빌려 만든 책으로 보인다. 기록상 토정비결은 조선 말기까지 등장하지 않는다. 정치·사회가 혼란한 시기 정감록이 유행했고, 개인 신수를 풀이하는 오늘날의 토정비결은 1920년경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토정비결은 생년월일을 이용해 144가지 괘로 만들어 신수를 보도록 만든 책이다.

이 책은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 진양하씨 창주공파 담산문중에서 지난해 기증한 고문헌에 포함되어 있다. 저자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갑술년 정월일에 표지를 수리했다는 기록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이 책의 본문은 최소 1934년 이전 담산 하우식(1875~1943)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날의 토정비결보다 간략하게 운수를 풀이하고 있는데, 토정비결의 초기 모습으로 보인다.

 
진양하씨 담산문중 기증 토정비결


◇화본사주

이 책은 함양군 지곡면 정취마을 하양허씨 문중에서 2019년에 기증한 고문헌에 포함되어 있다.

고문헌은 정산서원 소장본으로, 표지에는 ‘화본사주’이지만, 내용은 당사주의 일종이다. 정산서원에는 급천재(及泉齋) 현판이 걸려 있었다. 우물을 아홉 길이나 파고도 샘에 이르지 못하면, 오히려 우물을 버리는 것이 된다는 맹자의 말에서 연유한다. 허주·허목·허방우·허원식을 배향하고 있다. 독립운동가이자 제2대 경남일보 주필을 역임한 추범 권도용이 훈장으로 머물렀던 곳이다. 당사주는 이 마을에 사는 허원식의 손자 허조헌(許肇憲)이 1948년에 만든 책이다.

 
하양허씨 문중 기증 화본사주
정산서원 관계자들과 함께찍은 사진. 오른쪽 끝이 필자다.

◇당사주

이 당사주는 하동군 옥종면 대곡리 정연근 씨가 지난해에 기증한 고문헌이다.

문중의 선조 모렴재 정도동은 산청군 단성면 도천리 출신의 효자이고, 함인재 정국채는 하동 옥종면 대곡리 한계마을 출신의 학자로, 우암 송시열의 5세손 성담 송환기의 문인이다. 당사주의 책은 1964년 후손 정성일(鄭盛日)이 만든 것이다. 근래에 만들어진 책이어서 직업 중에 재봉틀과 자가용도 등장한다.

이 책은 오늘날 흔히 전생록으로 불린다. 사람의 전생과 현생을 알아본다는 뜻이다. 12가지 금수에 비교하여 성격 및 골격의 귀천을 서술한 것이다. 자기가 태어난 띠와 태어난 달에 해당하는 금수를 찾아보면 된다. 필자의 예를 들면 쥐띠 9월생이면 봉황에 해당한다. 봉황 조를 살펴보니 “쥐가 변하여 봉황이 된 격이니, 총명하고 정직하도다. 도모하는 일은 모두 처리하며, 귀한 사람이 앞길을 가르쳐 준다. 등 뒤는 어두우나 앞길은 밝다. 시비에 들지 마라. 구름이 피어나 비를 내리고, 싹이 돋아 생장한다. 길성이 밝게 비추고 있으니, 자식에게 반드시 경사가 있으리라. 말년 운이 왕성하여, 재물 길이 형통하다”라고 전한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점괘가 나와서 기분이 좋다.

한편 ‘당사주 법’은 함양군 지곡면 안동권씨 문중에서 기증한 책으로, 당사주 보는 법을 수록하고 있다. 남궁계가 갑술년인 1934년 9월에 지은 것으로 되어 있으나, 저자에 대해 자세한 것은 알 수는 없다. 본문은 모두 한글로 풀이해 두었다.

 
정연근 씨 기증 당사주에는 다양한 직업이 등장한다.
안동권씨 문중 기증 당사주 보는 법
◇결론

필자는 점이나 풍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자기가 태어난 사주에 의해 평생의 운이 정해져 있다는 것은 참으로 불합리한 면이 있다. 자신의 운명은 타고난 사주보다 노력으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위에서 열거한 고문헌에는 구설수·여인·도둑·물과 불을 조심하라 등 경계하는 내용이 많다. 이러한 것은 평소에도 누구나 조심하여야 하는 것이나 정월 초하루 점에서 한 번 더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또 삼월 먼 여행은 길하다고 했으니, 3월에 먼 여행했다가 우연히 길한 일이 생기면 점이 바르다고 믿었다. 토정비결을 살펴보면, 동풍에 얼음이 녹으니, 고목이 봄을 만나네(東風解凍 枯木逢春)와 같이 개괄적·은유적인 예언이 많다.

우리 선현들은 정월 초하루 점을 치며 지난해를 돌아보고 한 해의 운수를 가늠해 보기도 했지만, 새해 첫날 점괘를 보아 좋은 괘가 나오면 새로운 꿈과 희망을 가졌고, 경계하는 괘를 보고는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더욱 조심하는 계기로 삼았다. 그리고 위 책들은 대부분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지고 유행한 책들이다. 미래를 알 수 없는 암울한 시기, 이 점괘를 보고 마음에 위로와 미래에 대한 기대를 걸기 위해 이러한 책들이 더욱 유행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이정희 경상국립대 고문헌도서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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